신편 한국사근대46권 신문화운동 ⅡⅢ. 근대 과학기술2. 근대 과학기술의 도입3) 근대건축(1) 19세기 말 양식건축의 이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1. 근대 신문의 효시
          • 2)≪한성순보≫의 창간
          • 3)≪한성주보≫의 발간
          • 4) 박문국의 운영
        • 2. 근대 언론의 발달
          • 2) 최초의 민간지≪독립신문≫
          • 3) 외국인의 신문 발행과 잡지
          • 4) 일간지 ≪일신문≫
          • 5) 새로운 신문들
        • 3. 언론의 구국투쟁
          • 1) 한말 언론과 계몽운동
            • (1) 국내신문
            • (2) 국외신문
          • 2) 한말 언론의 국권회복운동
          • 3) 일제의 언론규제
      • Ⅱ. 근대 종교운동
        • 1. 유교
          • 2) 한말과 일제강점기 한국의 유교개혁사상
            • (1) 도학파의 유교개혁사상
            • (2) 애국계몽사상가의 유교개혁사상
        • 2. 불교
        • 3. 천주교
          • 6) 근대 천주교회의 사회적 기여
        • 4. 기독교
          • 1) 기독교의 수용과 정착
          • 2) 교회의 발전
          • 3) 기독교와 민족의식
          • 4) 기독교와 한국의 근대화
        • 5. 천도교
          • 3) 천도교의 민족운동
        • 6. 대종교
          • 2) 대종교의 교단조직과 포교활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1. 서양과학에 대한 인식
        • 2. 근대 과학기술의 도입
          • 1) 교통·통신·전기
            • (2) 사회간접자본의 전개과정
          • 2) 근대 의료기술
          • 3) 근대건축
            • (1) 19세기 말 양식건축의 이입
            • (2) 20세기 건축
          • 4) 근대 산업기술
            • (2) 개항 이후 기계기술의 도입정책
            • (3) 대한제국시기 방직기술의 이식
            • (4) 1905년 이후 정미기술의 이식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나. 천주교 및 개신교당

다음 널리 건립된 또 하나의 양식건축들은 종교계통의 건물들이다.

1890년의 명동주교관, 1892년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 1891∼1892년의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 1892∼1898년의 명동성당 등이다. 이들은 대개 고딕양식에 준한 것으로 벽돌쌓기는 중국인 기술자들이 전담하다시피 한 것이 하나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龍山神學校(사적 255호)512)는 프랑스신부 코스트(Eugence Jan, George Coste)의 설계로 1891년(고종 18) 5월 6일에 정초식을 올리고, 1892년 6월 祝聖式을 가졌다. 이 건물은 반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로서 중앙에 현관과 지하층 출입구롤 두고 좌우에 1층 현관에 이르는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는 전면에 편복도를 두고 안쪽으로 방들을 배치하여 모든 방에 직사광선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였고 평면 중앙과 평면 좌우의 끝단에는 계단실을 두었다. 정면은 중앙 현관부를 중심으로 좌우 3칸씩, 벽돌을 쌓아 붙임기둥(Pilaster)를 만들어 모두 7칸으로 구획하고 각 칸에는 세그멘탈아치(Segmental arch)의 창문을 두 붙임기둥 사이 모두에 설치하였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네 곳에 도머(Domer)를 두었다.

藥峴聖堂(사적 252호)513)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처음 1890년 순화동에 강당을 짓고 포교하다가 정가밀로신부가 책임자로 부임하여 약현 언덕의 金君善 소유의 대지를 사서 1891년 10월27일 정초하고 1892년 9월 준공을 보았다. 설계자는 당시 부주교이던 프랑스신부 코스트로서 중국인 기술자들이 시공하였다. 평면은 중앙에 본랑(Nave)을 두고 좌우에 본랑 폭의 1/2폭 되는 측랑(Aisle)을 두었고, 중앙으로 남녀 구별지어 앉도록 칸막이가 있었는데 1921년 교세의 상승과 더불어 본당신부 우신부가 칸막이를 철거하고 둔중하던 내부의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제단 뒤 후진(Apse)은 사각으로 꺾여져 있고 내부는 반원이다.

입면은 정면 중앙에 뾰족아치(Pointed Arch)의 현관문을 두고, 이의 좌우에 반원아치의 창문을 두었으며, 중앙 높직이 뾰족한 지붕을 가진 높이 22m의 종탑을 두었다. 이 종탑은 1905년에 새로 세운 것으로 종탑의 지붕에는 사면에 루까느(Lucarne)를 설치하였고, 그 아래 종탑 탑신 즉 종탑의 몸체에는 뾰족아치의 창을 쌍으로 두었다. 현관 바로 위에는 둥근 원화창이 있다.

측면은 후랫버트레스들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에 반원아치의 창들을 하나씩 같은 간격으로 설치하였는데 좌우 측면의 중앙위치에 부현관을 하나씩 두었다. 천장은 본랑에서는 뾰족 배럴볼트(Pointed barrel vault)이고, 측랑에서는 반원형 배럴볼트로 리브볼트이다. 지붕은 함석으로 마감하였다.

현재 중림동성당이라 불리고 있는 이 성당 근처의 焰焇橋(蓬萊橋) 언저리는 중국에 들어가 최초로 영세를 받은 李承薰의 집이 있었고, 1801년(순조 1), 1839년(현종 5), 1866년(고종 3) 등 이른바 신유·기해·병인년의 천주교수난 때 44인의 순교자가 이 곳과 가까운 서소문 밖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이 터를 구입하여 성당을 세운 것이라 한다.

명동성당은(사적 258호)514)은 건평 454평, 평면 길이 69m, 폭 28m, 높이 23m, 첨탑 높이 45m의 벽돌조적조의 건물이다. 약현성당을 설계한 바 있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코스트신부가 설계하고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을 받아 건립되었다.

본래 이 성당이 선 자리는 교회당 창설 때 교회당으로 삼았던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 있던 곳으로서 블랑주교가 김가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매수하였었다. 그 후 1887년 한불통상조약이 체결되자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이 곳 종현 언덕을 평평하게 고르고, 1892년 8월 5일 정초식을 갖고, 1894년 공사를 착공하였는데 당시 한국의 여건이 좋지 않아 중국인 벽돌공, 미장공들을 데려와 공사를 진행시켰다. 1896년에 벽체공사가 대체적으로 끝나고 聖祝式을 올린 것은 1896년 5월 29일이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 三廊式으로 평면 중앙에 본랑을 두고, 좌우에 측랑을 두었는데, 양 트란셉트(Transcept)의 돌출부는 한 스판 정도로 본격적인 라틴십자형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외관은 붉은 벽돌로 쌓아 중후한 맛이 나는데 20여 종의 다른 모양 벽돌을 만들어 세부설계에 부응하도록 하였다. 또 필요한 곳에는 회색 벽돌을 사용하였다. 정면 출입구, 각 창의 형태는 뾰족아치(Pointed Arch)를 사용, 고딕양식을 이루고 대첨탑은 본당 높이보다 비례상으로 낮아 보이나, 주변에는 소첨탑들로 장식하였다.

종탑의 좌우측, 본랑과 측랑의 경계지점에는 다각형 평면의 소탑(Turret)들이 서 있다. 버트레스(Buttress)는 등간격으로 세웠으나,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가 없어, 고딕양식의 진면목을 많이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내부 마감은 코스트신부의 별세로 위돌박(Victor Poisnel)신부가 맡아 마무리하였다. 제대부와 신자석 사이에는 영성체 난간(Communion Rail)이 있는데, 초기 성당인 대구 桂山성당의 것과 함께 현존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그러나 이 성당의 것은 본래 금속이었으나 2차대전 때 일본인들이 강탈하여 나무로 만든 것이 전하고 있다.

천장은 리브볼트(Ribbed Vault)이고, 기둥에는 주 피어(Main Pier), 부 피어(Minor Pier) 등이 모여 하나의 족주(簇柱, Clustered Pier)를 이루고 있다. 후진(Apse)은 각으로 꺾여 있고, 제대 뒤로 張勃이 12宗徒를 사실적으로 그린 벽화가 있다.

1899년 착공하여 1902년에 완공을 본 원효로성당은 같은 장소에 있는 용산신학교를 설계하였던 코스트신부의 설계로 이루어졌다. 내부에는 착공과 준공연대, 金大建의 이니셜 A-K(Andre Kim) 및 그의 생존연대(1821∼1846)가 기록되어 있고, 1942년까지 그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었다.

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건축하였기 때문에 남측 언덕 아래쪽은 3층이고 수녀원쪽은 2층이 된다. 성당의 출입은 정면(남측) 서쪽의 측면 입구로, 한편은 북쪽 제대 앞의 동쪽 입구로 할 수 있다. 평면은 정면 2柱間에 종탑부 1칸이 서측으로 붙어 있고, 측면은 5주간에 5각으로 둥그스름하게 꺾여진 후진이 붙어 있다. 각 기둥에는 후랫버트레스(Flat Buttress)가 붙어 있다.

내부는 본랑과 측랑의 구분없이 본랑만으로 이루어졌고, 천장은 포인티드 배럴볼트(Pointed barrel vault)이다. 창문은 뾰족아치 창으로 후랫버트레스와 함께 고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후면에는 원형장식 쌓기로 장식한 난간을 두른 블라인드 갤러리(Blind gallery)를 두었는데 3개의 반원아치가 받치고 있다.

한편 1886년의 배재학당 강당, 1895∼1898년의 정동교회, 1896∼1900년의 이화학당 교사 등이 개신교계통의 건축물로 건립되어 근대건축의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貞洞敎會(사적 256호)515)는 건평 175평, 연건평 364평의 단층 벽돌조적조 건물이다. 이 교회당건물은 우리 나라 최초의 개신교의 교회당 건물로서 1895년 착공하여 1896년 12월26일 獻堂式을 베푼 바 있다. 본래는 115평 규모였으나 1926년 증축하여 60평이 증가, 총건평 175평이 되어, 오늘날과 같은 평면과 입면을 이루게 되었다.

평면은 본래 라틴십자형(Latin cross)으로 본랑과 제단의 트란셉트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후 증축을 하면서 본랑 양측에 측랑을 첨가하여 이 부분이 트란셉트와 붙게 됨으로서 라틴십자형의 평면에서 장방형 평면으로 바뀐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후진이 돌출되고 또 종탑부가 정면 동남측 모서리에 자리잡음으로써 교회당 평면의 모습을 그런대로 갖추고 있다.

입면은 벽돌쌓기로서 큰 벽체를 구성하고 곳곳에 뾰족아치의 창문을 내어 고딕양식의 교회당 모습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석조기단으로 조선시대 목조건축의 기단에서의 솜씨가 배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지붕은 함석판이었으나 최근 보수공사 때 동판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512)주남철,<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앞의 책), 312∼313쪽.
513)金 珠,<韓國初期聖堂建築에 關한 硏究>(梨花女大 碩士學位論文, 1982), 17∼20쪽.

주남철,<약현성당>(앞의 책), 304∼305쪽.
514)金 珠, 앞의 글, 20∼25쪽.

주남철, 위의 책, 318∼321쪽.
515)주남철, 위의 책, 314∼315쪽.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