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환호
가) 청동기시대
(가) 검단리유적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구 웅촌면 검단리 산 62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1990년 2월 3일부터 80일간에 걸쳐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발굴된 지역은 구릉의 정상부와 그 주변의 경사면으로 해발 104∼123m이고, 평지로부터의 비고는 14∼33m였다. 환호 유적은 정상부인 해발 112∼121m에 걸쳐 확인되었다.
호의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의 一重壕였으며 규모는 장경 118m, 단경 70m이고 길이는 298m, 내부면적은 5,974㎡였다. 호의 폭은 50∼200㎝, 깊이는 20∼110㎝, 단면은 대부분 U字形이지만 일부는 V자형으로 되어 있었다. 출입구는 남북 각 1개소씩 2곳에 설치되었는데, 이 부분은 구덩이(溝)를 파지않고 원 지면을 남겨두어 안팎을 다리처럼 연결하는 陸橋를 만들었다. 남쪽 출입구는 300㎝, 북쪽 출입구는 275㎝였다. 구덩이 내부에서는 다량의 토기류와 약간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는데, 출토 유물로 보면 사용기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환호 안팎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93동이 발굴되었다.0810) 이 유적의 시기는 무문토기 전기 말경(기원전 7∼ 6세기)으로 보고 있다.
(나) 송국리유적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송국리에 위치하며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1992년과 1993년에 발굴되었다. 後背濕地가 끝나는 표고 16∼20m의 낮은 대지상의 구릉에 형성되어 있다.
55∼57지구의 호는 황갈색 풍화암반층을 파고 설치되었는데 구지표를 포함한 호의 어깨선 상부가 상당부분 삭평된 듯하였다. 폭은 270∼380㎝ 정도였고, 깊이는 90∼110㎝ 정도이며, 단면은 얇고 넓은 U자형을 띠고 내부 바닥과 벽에는 굴지구에 의해 파여진 굴곡이 심하였다.
50-A지구의 호는 폭 380∼420㎝, 깊이 30㎝ 내외로 단면은 얇고 넓은 U자형이고, 파인 호의 내부 역시 굴지구에 의한 굴곡이 심하였다. 57지구의 호도 풍화암반층을 파고 구축되었는데 어깨선 상부가 상당 부분 삭평된 것 같다. 호의 폭은 365㎝, 현 깊이는 87㎝였고 단면은 넓은 U자 모양이며, 바닥과 벽면에는 굴지구에 의한 굴곡이 심하였다.0811) 중심 연대는 대략 기원전 5세기경이다.
(다) 덕천리유적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덕천리 168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경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92년 10월부터 7개월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Ⅱ지구의 구릉과 작은 谷間에서 확인된 덕천리유적의 호 폭은 3m, 깊이는 1∼1.5m였고, 확인된 길이는 150m였으며 단면은 둥근 V자형이었다. 호의 내부 매몰토에서 다수의 무문토기가 출토되었다.0812)
나) 철기시대
(가) 대성동유적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위치하며 1991년 10월부터 5개월간 걸쳐 경성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제3차에 걸친 결과 제1지구의 표고 9m 지점에서 확인되었다.
호의 폭은 100㎝, 깊이 70㎝ 정도로 단면은 V자형이고 길이는 9m 정도였다. 호가 구축된 시기는 호의 바닥으로부터 출토된 무문토기 고배를 근거로 기원전 1세기 중엽이고, 기능을 상실한 시기는 대체로 3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고 한다.0813)
(나) 봉황대유적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에 위치하며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92년 12월 27일부터 96일간에 걸쳐 발굴 조사되었다.
2차에 걸친 조사로 46호 주거지 아래에서 호가 검출되었는데 그 규모는 폭 250㎝, 깊이 150㎝였고 단면은 U자형이었다. 내부에서는 무문토기 저부, 두형토기, 단면삼각구연점토대토기, 흑색마연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호의 외부에는 직경 50㎝ 정도의 기둥구멍이 5개가 확인되었는데 호의 외부와 100㎝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0814)
(다) 양산 패총유적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다방리 224번지에 위치하며 1967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되었다.
해발 120m의 구릉위 정상부에 위치한 이 유적의 호 규모는 상폭 280∼350㎝, 하폭 50∼80㎝, 깊이 130㎝ 내외였다. 단면은 V자형이고 가장 깊은 바닥에 평탄한 부분을 만들었다. 호가 있는 지형은 병목처럼 생겼는데 폭은 12m 정도였다. 호와 근접하여 기둥구멍처럼 생긴 구덩이가 10여 개 발견되었으나 목책이 설치되었던 흔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호의 내부를 메운 흙은 하반부는 여러 개의 토층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 灰層과 소량의 패각을 포함한 층이 형성되어 있었고, 최하부에는 사질토가 퇴적되어 있었다. 하반부에서는 소량의 토기 파편이 채집되었다. 상반부는 갈색토의 두터운 퇴적층을 이루고 있었으며 유물은 포함되지 않았다.
남북 트렌치와 D트렌치의 북반부에도 얕은 도랑처럼 생긴 부분이 발견되었는데 이것도 호의 바닥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한다. 폭은 약 80㎝ 정도였다.0815)
다) 삼국시대
(가) 가음정동 패총유적
경상남도 창원시 가음정동 당산 677번지 일대에 소재한다. 창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991년 11월 11일부터 12월 20일까지 39일간에 걸쳐서 발굴되었다.
해발 73.5m의 소구릉인 당산 가운데 발굴 조사된 지역은 남서쪽에 위치한 Ⅰ지구로서 해발 48∼50m 선상에 위치하였다.
호는 패총의 1지구 북동쪽 가 3∼가 5pit 내의 패각층 아래에서 확인되었는데 폭 150∼200㎝, 깊이 20∼70㎝, 단면은 U자형이었으며 확인된 길이는 약 10m 정도였다. 이 호는 기원후 3∼4세기경 사이의 어느 시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0816)
(나) 봉황대유적
부산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91년도에 실시된 시굴조사에서 확인되었다. 호는 봉황대 서쪽 사면 해발 17m 선상의 다소 평탄한 곳에 위치하였다. 폭은 350㎝, 깊이 150㎝로 단면은 계단식으로 단이 진 역사다리꼴이었으며 확인된 길이는 약 90m 정도였다. 대략 기원후 4∼5세기의 금관가야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0817)
0810) | 鄭澄元·安在晧,<蔚山檢丹里遺蹟>(≪考古學硏究≫37-2, 1990), 17∼20쪽. 釜山大 博物館,≪蔚山檢丹里마을遺蹟≫(1995), 211∼2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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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1) | 國立公州博物館,≪松菊里≫Ⅴ;木柵(1)(1993), 92∼97쪽. |
0812) | 李相吉,<韓國·昌原德川里遺蹟發掘調査槪要>(≪古文化談叢≫32, 1994), 250쪽. |
0813) | 申敬澈,<韓國金海の環濠集落>(≪古代の日本≫5, 角川書店, 1992), 3∼6쪽. |
0814) | 李在賢,<金海 鳳凰臺遺蹟 2차 발굴조사 개요>(≪제36회 전국역사학대회 발표요지≫, 1993), 542∼549쪽. |
0815) | 尹武炳·韓永熙 외,<梁山 多芳里貝塚 發掘調査報告>(≪淸堂洞≫, 국립중앙박물관, 1993), 215∼222쪽. |
0816) | 昌原文化財硏究所,≪昌原加音丁洞遺蹟≫(1994), 141∼193쪽. |
0817) | 釜山大 博物館,<金海鳳凰臺遺蹟 지도위원회자료>(1992년 3월 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