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목책
가) 청동기시대
(가) 미사리유적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에 위치하며 고려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해 1988∼1992년까지 4차에 걸친 발굴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목책렬 유구는 A지구 동쪽 강안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레벨상으로는 안쪽에 비해 약간 높아 마치 작은 단구의 위에 형성된 듯한 모습을 하였다. 기둥구멍은 직경 40㎝ 정도, 깊이는 20㎝ 내외였다. 기둥구멍의 간격은 60㎝로 작은 단구의 정상부를 따라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수는 20개였다. 孔列土器期(무문토기 전기)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0818)
(나) 송국리유적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1992년과 그 이듬해에 걸쳐 발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의 목책렬은 커다란 하나의 골짜기를 포함하는 형태로 총연장 길이는 약 2.5㎞ 정도로 추정되며, 목책으로 둘러싸인 취락 내부의 면적도 약 61㏊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길이 430m가 확인되었는데 목책렬은 지역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었다. 즉 54지구의 목책 기둥구멍 사이의 간격은 180㎝ 내외로 넓으면서 균일하게 배치되었고, 57지구의 경우는 130㎝ 내외로 54지구보다는 밀집하였다. 54지구 舌狀臺地 남쪽지역은 220∼240㎝로 간격이 매우 넓었다. 기둥구멍들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되는데 평면(장)방형이며 대형인 것, 평면 원형 또는 방형이면서 중형인 것, 원형 또는 방형이면서 소형인 것이 있었다. (장)방형이면서 대형인 기둥구멍은 폭 130∼140㎝, 깊이 110㎝의 크기이며 중간크기의 것은 폭(직경) 100∼110㎝, 깊이 50∼70㎝의 것들로 원형도 일부 보이나 대부분 방형이었다. 소형의 기둥구멍은 원형 기둥구멍, 방형 기둥구멍 모두 폭 70∼80㎝, 깊이 40∼50㎝로 거의 같은 크기로 되어 있었다. 기둥구멍 내에 세워진 기둥은 30㎝ 내외의 것들이 대부분이고 기둥 사이는 54지구 설상대지와 57지구에서 확인된 평면 토층 양상으로 보아 기둥 사이에 橫帶를 설치하고 점토벽을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기둥구멍은 대부분 수직으로 팠으며 파인 기둥구멍의 벽에는 일부 굴지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도 있다. 기둥구멍의 바닥은 흙다짐한 것과 積心石을 한 것이 있었다. 흙다짐한 것도 대부분 지반이 견고한 풍화암반을 파고 설치된 기둥구멍들이며, 적심석을 한 경우는 지반이 약한 부식토를 파고 설치된 기둥구멍들이 대부분이었다. 다짐층 상부에 딱딱한 암반편이나 작은 돌들을 柱根에만 괴인 것도 있었다.0819)
나) 철기시대
철기시대 목책으로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의 達城遺蹟을 들 수 있다. 1968년 11월 경북대학교 조사팀에 의해 발굴되었다.
동쪽 성벽 밑에서 암반 위에 높이 약 5m(3층)의 퇴적층을 확인하였다. 이 중 제3층은 성 밖으로 경사를 이룬 암반 바로 위로, 암반에서 약 20∼50㎝의 자연토층을 두고 그 위에 형성된 문화층이다. 여기서 대량의 패각류와 김해식토기·흑도·골촉·桃實 등이 출토되었으며, 수직으로 박힌 나무기둥 흔적이 10여 개 나왔으나 목책인지 아니면 주택벽주인지 확실하지 않다.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