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신라어
삼국 중에서 신라의 언어자료들이 가장 많이 전해져 왔다.≪삼국사기≫와≪삼국유사≫를 위시하여 여러 가지 국내외 기록에 등장하는 인명·지명·관직명들은,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신라의 언어자료가 된다.<壬申誓記石銘>·<南山新城碑銘>·<甘山寺彌勒菩薩造像記>·<葛頂寺石塔記>등등 여러 가지 금석문과 古記錄에서는 전통 한문의 문법에 어긋나고 국어의 문법에 맞는 문장 구조와 이두식 표기가 보인다.≪삼국유사≫에 소재하는 향가 14수는 삼국시대 언어자료로는 특이하게 국어 문장의 온전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신라의 언어자료에 보이는 신라어 어휘에도 한자어 혹은 한문식으로 구성된 듯이 보이는 이름들이 초기 자료에서부터 등장한다. 예를 들면, 王妃의 호칭 夫人(閼英夫人·雲帝夫人), 귀족의 호칭 公(瓠公·蘇伐公), 王(葛文王·許婁王), 지방관의 호칭 主(郡主·城主·軍主·鎭主) 등과 같은 한문식 호칭들이 아주 이른 시기에 관한 기록으로부터 나타난다. 그러나, 한자어의 영향은 상당 기간 상대적으로 약하였던 듯하다. 6세기초에 등극한 智證王대까지 왕의 호칭이 居西干·次次雄·尼師今·麻立干이고, 그 기간의 王名도 赫居世·南解·儒理·脫解·婆娑·祗麻 등이며, 3대왕 유리니사금(재위 24∼57년) 시대에 확립된 관료제도에 포함된 伊伐飡·伊尺飡·波珍飡·阿飡 등등이 모두 非한자어이다.
신라어의 자료에서 추출되는 고유어 혹은 非한자어 단어들 역시 대다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고구려어와 백제어의 경우와 같이 석독과 음독 표기가 병기된 경우 “의미까지 알 수 있는 신라어의 고유어”가 된다.≪삼국사기≫와≪삼국유사≫에는 간간이 설명을 붙여 놓은 신라어 단어들이 수록되어 있다. 향가에서는 조사와 어미의 일부를 복원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자료로부터 추정·복원될 수 있는 신라어 단어가 30여 개 된다. 그 중 다수가 15세기 중세국어 및 현대국어 단어들과 비교되는 것이 고구려어 및 백제어 자료와 다른 특이한 점이다. 삼국이 신라에 의하여 통일되었고, 신라는 고려, 고려는 조선조에 승계된 역사에서 연유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신라어의 고유어로서 의미까지 파악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다.
朴(瓠 박)으로≪삼국사기≫(권 1, 신라본기 1 始祖赫居世居西干)에 “辰[韓] 사람들은 瓠를 朴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것은 중세국어와 현대국어의 ‘박’과 일치한다. 또한 嘉俳(<한>가위)가 있다.≪삼국사기≫(권 1, 신라본기 1 儒理尼師今)에는 8월 15일(음력) 전후로 벌어지는 민속놀이 嘉俳를 설명하였는데, 중세국어 ‘’, 현대국어 ‘(한)가위’와 일치한다. 그밖에도 破珍(海, 바다, 바), 韓(大;중세국어 ‘한’), 那(川 내), 弗炬(赤, 光明, 붉-), 乙(井), 勿(水, 물), 閼知(小兒, 아지), 吉(永, 길-), 居柒(萊, 荒, 거츨), 異次·異處(厭;중세국어 ‘잋-’), 密(推, 밀-) 등이 비교적 용이하게 확인되는 신라어 고유어들이다. 향가에서 확인되는 조사로는 주격 伊·是(-이/가), 속격 矣·衣(-의), 처격 中·良中·也中(-에), 대격 乙(-을/를), 조격 留(-으로), 공동격 果(-와/과), 주제지칭사 隱(-은/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