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제의 금속제 기명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銅托銀盞·청동발·수저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銅托銀盞은 왕비의 목침 가까이에서 출토되었는데 잔과 뚜껑 그리고 잔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잔은 은제이며 동제의 잔탁은 가운데에 잔 받침이 높게 자리하고 은제잔의 낮은 굽을 잔탁의 받침 안에 들어맞게 되어있다. 뚜껑은 삿갓형식의 꼭대기에 연봉오리형(蓮蕾形) 손잡이가 달리고 손잡이 주위에는 8판의 蓮花座를 금제로 장식하였다. 잔의 외면과 뚜껑 위에는 용·사슴·새·연꽃 등을 선각하였다. 그밖에 수저 등도 보이고 있다. 수저는 靑銅鉢 안에 들어 있는 채 발견되었다. 이 수저는 중국 河北定縣의 北魏 석함에서도 같은 형식이 보이고 있는데, 이 석함에는 太和 5년(481)의 명문이 있어서 역시 무령왕릉과의 연관성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1993년 우리를 놀라게 한 金銅大香爐는 백제 羅城과 고분군 사이에 위치한 부여 능산리의 寺址에서 발굴되었으며, 여기서는 이외에도 金銅光背片·금동장식금구 그리고 토기와 구슬들이 출토되었다. 이 향로는 높이 64cm의 백제 유물 가운데는 보기 드물게 당당한 대작으로 몸체와 뚜껑 그리고 받침의 세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머리를 들어올린 한 마리의 용이 爐臺를 대신하며 용의 입으로 仰蓮 모양의 爐身을 물고 있다. 뚜껑에는 여러 겹의 산봉우리가 솟아 있고 각 산기슭과 사이사이에는 인물상·동물상·연화문 등이 양주되었다. 향로의 꼭대기에는 날개를 활짝 피고 꼬리를 힘껏 치켜올린 봉황새가 보주를 딛고 서 있으며 턱 아래로 작은 보주를 끼우고 있다. 바로 발 아래에는 5인의 주악상이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초기 단계의 어자문기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癸未銘三尊佛에 보이는 예와 더불어 어자문기법의 백제 전래를 대변하고 있다. 게다가 이 향로의 연대는 伴出된 昌王銘의 사리감에서 보이는 연대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인정된다. 昌王銘舍利佛龕은 향로가 출토된 능산리 사지의 목탑지에서 1995년에 조사되었는데 “百濟昌王十三季太歲在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란 명문이 있어 567년에 조성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으며 이 향로도 사리감과 직접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