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의복
王은 五采服을 착용하였으며, 官人은 大袖衫 또는 筒袖衫에 大口袴를 입었고, 庶人은 褐衣를 입었으며, 婦人은 裙襦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襦를 지칭하는 것으로는 大袖衫·黃衫·衫筒袖·長襦·褐衣 등이 있는데, 이를 보면 대개 袖口의 모양과 명칭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袖의 형태는 左衽에 筒袖인 窄袖形에서 右衽에 廣袖形으로 점차 변화되었던 것 같다. 通溝지방 고분벽화에는 주인공일지라도 대개 착수를 착용하고 있는데, 평양지방 고분벽화의 주인공은 거의 다 袍를 입고 있긴 하지만 광수를 착용하고 있으며 여밈도 우임으로 넘어가고 있다.
袴를 지칭하는 것으로는 太口袴·大口袴·袴大口·赤黃袴·窮袴 등이 있는데, 대구고와 궁고의 구별은 그 폭에 있고 또 착용자의 신분과도 관계가 있었다. 고분벽화에 나타난 것에서 보면, 궁고는 오늘날의 총대바지, 잠방이형의 통이 좁은 下庶人의 下服이며, 대구고는 貴人들의 하복이었다. 당시에는 여자도 바지를 입은 모습을 벽화를 통해서 볼 수 있으며 평상시에는 남자와 같이 바지만을 입었고, 儀禮 때에는 바지 위에 치마를 더 입었다고 보여진다.
袍의 경우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나 고분벽화에 포를 착용한 인물이 그려져 있어 그 존재를 알 수 있다. 포의 형태를 보면 直領交衽式이나 直袖型이었고, 저고리에서와 같이 깃·도련·수구에는 襈을 둘렀다.
당시 포나 저고리에는 옷고름이 없었고 帶를 사용하였는데 기록에는 銀帶·金釦革帶·白韋帶·白皮素帶·紫羅帶·素皮帶 등이 나온다. 이것은 주로 男子用이었고 고분벽화에는 대개 布帛帶·繩帶類 등이 그려져 있다.
靴와 履에 관하여는 黃革履·赤皮靴·烏皮靴 등의 기록이 보이고, 화는 胡服계통의 것으로 北方族이 신던 것이고, 당시의 형태를 고분벽화에서 보면 조선시대의 水靴子와 별로 다른 것이 없다. 그리고 이는 南方族이 신던 것으로 보통 가죽으로 만들어 신었다고 보여진다.
이상으로 고구려 복식에 관하여 살펴보았는데, 여기에서 귀족과 평민의 차이가 관모에 있어서는 재료와 수식, 의복에 있어서는 소매의 길이와 폭, 바지통의 폭, 치마의 길이 등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호화찬란하였던 오채복에 金銅飾冠을 비롯하여 淵蓋蘇文이 莫離支가 되면서 그 衣服·冠·履에 모두 金綵를 裝飾하였다는 기록에서 당시 귀족의 복식을 짐작할 수 있으며, 여기에다 수식으로 耳飾에서부터 頭飾·頸飾·指環·腰佩에 이르기까지 모두 갖추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