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고려 시대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Ⅱ. 대외관계1.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고려의 북진정책1)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3) 일본의 정치동향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1. 신분제도
          • 1) 신분제도의 형성과 구조
            • (1) 신분과 신분제도
            • (2) 신분구조의 구성
            • (3) 신분계층의 편성 단위와 기준
          • 2) 관인계층
            • (1) 관인층의 특성
            • (2) 음서제와 과거제
            • (3) 공음전과 한인전
            • (4) 문반·무반과 남반
            • (5) 귀족의 계층구성
          • 3) 향리
            • (1) 임무
            • (2) 향역의 세습과 종사
            • (3) 향리의 신분
          • 4) 군인
            • (1) 군역
            • (2) 군역의 세습
            • (3) 군인의 신분
          • 5) 잡류
            • (1) 이직으로서의 잡류
            • (2) 이족으로서의 잡류
          • 6) 양인농민
            • (1) 공과·공역의 부담
            • (2) 생산계층
            • (3) 세업으로서의 농업생산
          • 7) 공장
            • (1) 공장의 유형
            • (2) 공장의 신분
          • 8) 향·소·부곡인
            • (1) 사회·경제적 지위
            • (2) 신분상 지위
            • (3) 신분상 제약의 의미
          • 9) 진척·역민
          • 10) 양수척 (화척·재인)
          • 11) 노비
            • (1) 신분상 특성
            • (2) 사회·경제적 지위
          • 12) 신분제도의 성격
        • 2. 가족제도
          • 1) 가족과 혼인
            • (1) 가족
            • (2) 혼인
          • 2) 재산의 상속
          • 3) 친족조직
            • (1) 성씨와 계보관념
            • (2) 부변·모변과 양측적 계보관계
            • (3) 촌수와「나」를 기준으로 한 친속
            • (4) 양측적 친속의 특성과 기능상태
          • 4) 향촌사회의 친족관계망
            • (1) 생활권과 친족관계망
            • (2) 계급내혼에 의한 구성
        • 3. 사회정책과 사회시설
          • 1) 사회정책
            • (1) 진휼정책
            • (2) 의료정책
          • 2) 사회시설
            • (1) 의창
            • (2) 상평창
            • (3) 제위보
            • (4) 동서대비원
            • (5) 혜민국·기타 기구
            • (6) 지방의 의료기구
            • (7) 민간의 의료사업
        • 4. 형률제도
          • 1) 율령의 내용
            • (1)≪고려사≫형법지에 대한 검토
            • (2) 고려율의 내용
          • 2) 사법제도
            • (1) 고려율의 적용문제
            • (2) 고려물의 형벌체계
            • (3) 고려물의 행형체계
            • (4) 행형의 실태
      • Ⅱ. 대외관계
        • 1.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와 고려의 북진정책
          • 1) 10∼12세기 동아시아 정세
            • (1) 당송변혁기 중국의 정치적 동향
            • (2) 북방민족의 흥기와 송의 동향
            • (3) 일본의 정치동향
          • 2) 고려의 북진정책
            • (1) 국초 북진정책과 발해유민 대책
            • (2) 국초 여진문제의 발생
        • 2. 5대 및 송과의 관계
          • 1) 5대와의 관계
            • (1) 태조대의 대중국관계
            • (2) 혜종·정종대의 대중국관계
            • (3) 광종대의 대중국관계
          • 2) 송과의 관계
            • (1) 정치적 관계
            • (2) 문화적 관계
            • (3) 여송 교통로
            • (4) 경제적 관계
        • 3. 북방민족과의 관계
          • 1) 거란 및 여진과의 전쟁
            • (1) 거란의 침입과 그 항쟁
            • (2) 여진정벌과 9성
          • 2) 거란 및 금과의 통교
            • (1) 거란과의 통교
            • (2) 금과의 통교
        • 4. 일본 및 아라비아와의 관계
          • 1) 일본과의 관계
            • (1) 사절의 내왕
            • (2) 표류민의 송환
          • 2) 아라비아 및 남양 여러 나라와의 관계
            • (1) 고려와 아라비아와의 관계
            • (2) 남양 여러 나라와의 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3) 일본의 정치동향
가. 평안시대의 섭관정치

 중국 대륙에서 송이 중원을 통일하고, 북방의 요나라와 대치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平安(헤이안)시대로서 藤原家에 의한 귀족정치가 극성을 이루고 있었다(858∼1160).

 794년 수도를 平城(奈良)에서 평안(京都)으로 옮겼던 초기만 하여도 일본 은 桓武天皇과 이후 3대 천황들의 혁신정치에 의하여 중앙집권적 관료기구가 효과적으로 운영되어 천황의 전제권은 강화되었다. 그리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당나라와의 교역이 추진되고, 아울러 당나라 유학승인 傳敎大師 最澄(사이쵸오)에 의해 창시된 天台宗과 홍법데사 空海(쿠우카이)에 의해 창시된 眞言宗은 천황의 적극적인 후원에 힘입어 국가사상으로서 발전해 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가기구의 정점으로서 천황의 권위를 지탱해 온≪大寶律令≫의 원칙이 희박해지면서 조정의 대귀족과 불교사원들에 대한 천황의 강력한 통치력은 상실되어 갔다. 나아가 귀족들은 도시나 國(쿠니)에 거점을 가지면서 자신의 지위를 굳혀 가니 점차 권력의 지방분권화와 세습제가 심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곧 중앙재정의 축소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나라의 모든 토지는 황제의 토지”라는 율령제도에 입각해 재편되고 운영 되어 온 口分田을 토대로 한 중앙정부의 수입은 점차 줄어들게 되고, 대신 각 지방귀족이나 사원의 사유지로 조세가 면제된 莊園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장원이라는 것은 원래부터≪대보율령≫의 결함에서 야기된 것만도 아니며 귀족에 의한 수탈 때문에 나타난 형태도 아니었다. 오히려 사유권이 여러 차원에서 확장된 결과라 하겠다. 즉 귀족들에게 공직에 대한 급부 로서 지급되었던 공해전·위전·직전 따위가 영업전으로서 상속되어 갔다. 그러나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진전의 개발을 통한 사적 소유권의 확대였 다.

 중앙정부는 재원이 되는 구분전의 확대를 위해 개간을 장려하고 때로는 개간지에 대한 특별한 권리를 주어 새로 개간한 토지에 대하여는 1대 내지 3대 에 걸쳐 보유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러다가 743년 聖武천황은 신전에 대한 개간자의 영구소유를 허락함으로써 토지공유의 근본개념을 와해시켰다. 그 후 이러한 사유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면세특권이 부여되었다. 여기서의 면세란 세액의 면제뿐 아니라 지방관청의 지조검사나 경찰관리 등과 같은 기관의 보호와 간섭으로부터 불가침권을 갖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천황의 권한이 지방에까지 침투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적 보유지, 즉 장원제도는 8세기 경까지는 드문 현상이었으나 13 세기 경에 이르면 2∼3백 명에 불과한 귀족들에 의해 전국토가 5천 개의 장 원구역으로 분할되는 양상을 보였다. 더구나 장원의 소유자가 행사할 수 있는 각종 면세특권이 권력에 의해 공식적으로 승인·확보됨에 따라 소유자(즉 영 주)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땅을 새로 구입하거나 권력을 이용해 공유지를 불법 적으로 병합하여 그 규모를 확대해 갔다. 이외에도 寄託에 의한 장원 확대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장원제의 발달, 지방분권화 경향과 세습제의 영향으로 9세기 중엽 에 이르러 천황을 대신하여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른 귀족이 있었으니 바로 藤原家이다. 이 가문은 7세기 天智천황을 보필하여 大和改新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한 中臣鎌足(나카토미노 카마타리)457)의 후손이다. 그는 이외에도 천황권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사건과 나라에서 경도로 수도를 옮기는 일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천황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았다. 이러한 천황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그의 후손인 藤原良房(후지와라노 요시후사)은 太政大臣에 임명되어 전 관료에 대한 통치권을 허락받았고 이를 계기로 등원가가 황실과 경쟁할 수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렇게 천황의 신뢰와 요직을 확보한 등원양방은 마침내 황족을 제거하고, 仁明천황의 후임으로 자신의 생질인 道康親王을 황태자로 삼았으며, 866년에는 자신의 나이 어린 외손자 淸和를 제56대 천황에 즉위시키고 자신은「攝 政」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이처럼 어린아이를 천황에 즉위시킨 것은 유례가 없는 것이었으며, 일본 역사상 황족이 아닌 인물이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천황을 대신하여 정치를 전담하기는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천황이 성인이 되면 물러나야 하는 것이 섭정의 자리였지만 등원양방은 다시「關白」이라는 공식 직함을 갖고 擅斷을 계속하였다. 등원양방 사후 그의 양자 藤原基經(후지와라노 모토쓰네)이 제57대 陽成천황의 섭정이 되었는데 그는 양부보다 더욱 강력한 권한을 장악하였다. 양성천황이 16세가 되자 압력을 넣어 천황의 자리를 光孝천황에게 양위케 하였으며, 등원기경의 후원으로 천황의 자리에 오른 광효천황은 그의 권위를 강화시켜 주는 데 주력해야 했다. 이리하여 등원기경은 제59대 宇多천황대까지 섭정과 관백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모든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였으니 이 때부터「섭관정치기」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9세기 말부터 등원가는 천황을 대신하여 중앙의 절대적인 통치권을 장악하는「攝」·「關」이라는 두 지위의 독점과 황족의 외척이 되는 특권을 보유하며 200년 가까이 일본정치사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458)

 등원가의 전성기는 藤原道長(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섭관기였다. 그는 30년 동안 사실상의 최고통치권자로, 4명의 천황이 그의 사위였으며 다른 3명의 천황은 그의 외손자였다. 등원도장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천황 주위 의 다른 세력을 제거하며 등원가의 권력독점을 유지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위 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의식적인 도피증을 낳게 하였다. 마침 당시 지진과 화재, 천연두의 만연과 같은 재해가 빈번하였는데 이러한 변화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등원가에 의해 억울하게 피살된 원혼들이 내린 재앙이라 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도처에서 원혼을 달래는 제사가 행해졌으며, 흉흉한 민심에 대하여 황실에서도 대대적인 위령제를 올렸다. 이 위령제의 영향으로 훗날 원혼을 달래주는 전문적인 神社가 출현하게 되었다.

 이처럼 10∼11세기 섭관정치가 극에 달해 있을 때 일본의 대외관계를 보 면, 당시 일본은 폐쇄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하였으나 고려에 대하여는 비교적 적극적이었다. 일본과 고려의 교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白河천홍 延久 5년 (1073;고려 문종 27) 7월의 일이다. 일본상인 王則貞과 松永年 등 42인이 고려 예성강에 입항하여 문종에게 螺鈿을 비롯하여 일본칼·거울·현석·문궤·화 병풍·궁시·수은 등의 일본 특산물을 헌상하였다. 이외에도 문종 및 선종대 에 걸쳐 정식으로 일본상선이 고려에 온 것은 20회에 달하였다. 그런데 도항 한 일본인들 가운데는 日本國使·對馬島使 등과 같이「使」를 칭하는 자가 많아 조공무역의 형식을 취한 교역이 大宰府體制에 기초하여 추진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던 사무역의 형식과는 다른 공무역의 성격을 띤 것이라 하겠다.459)

 8세기에 9차례 遣唐使를 파견했던 것과 달리 이 무렵 일본과 송의 관계는 정치적 외교관계가 수립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송 상인과 일본 승려에 의한 민간 차원의 왕래는 부단히 계속되었다.460) 물론 그 사이 鳥羽천황 元永 원년(1118)에 송의 휘종은 일본조정에 致書하여 오랫동안 교류가 끊긴 것에 대하여 유감의 뜻을 표하며 통교의 뜻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수차례 조신회의를 거듭한 결과 이에 대한 회답을 보내지 않기로 하였다. 이것은 당시 송이 문화적으로 우수한 나라임에 분명하나 당시 송과 대치하고 있던 거란의 국력을 의식한 때문이다. 당시 일본은 송에 대하여는 송 상인과 일본 승려를 통한 문화 교류를 유지하는 데 그친 것에 비하여 거란에 대하여는 이미 5대 혼란기부터 시작하여 堀河천황 寬治 5년(1091;요 道宗 大安 6;고려 선종 8)까지 鄭元·鄭心 및 승 應範 등 28인을 보내 방물을 바치는 등 세 차례에 걸쳐 사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461)

457)그는 대화개신 성사 후 藤原(후지와라)이라는 성을 하사받고, 그의 세 손녀가 황족과 혼인함으로써 귀족 중의 최고 귀족이 되었다.
458)坂本賞三,<攝關常置時代>(≪日本の歷史≫6, 小學館, 1974), 219∼227쪽 참조.
459)坂本賞三, 위의 글, 163∼165쪽.
460)王儀,≪趙宋與王氏高麗及日本的關係≫(臺北;中華書局, 1980), 63∼66쪽.
461)≪遼史≫권 25, 本紀 25, 道宗 大安 7년 을해 및 8년 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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