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Ⅰ. 임진왜란4. 왜란중의 사회상3) 항왜와 부왜·부로(2) 부왜·부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1. 왜란 전의 정세
          • 1) 교린정책과 왜변
          • 2) 일본의 국내정세
          • 3) 조선의 국내정세와 군사준비 실태
        • 2. 왜란의 발발과 경과
          • 1) 왜란의 발발
          • 2) 의병의 봉기
          • 3) 수군의 승첩
            • (1) 임란 전의 해방체제와 전라좌수군
            • (2) 초기 해전의 승첩과 전과
            • (3)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
          • 4) 명군의 참전과 전세의 변화
            • (1) 참전의 배경
            • (2) 제1차 평양성전투와 그 영향
          • 5) 조·명군의 반격과 전국의 추이
            • (1) 조선 관·의병의 활약
            • (2) 명군의 평양승첩과 전후의 행동
        • 3. 강화회담의 결렬과 일본의 재침
          • 1) 강화회담의 진행과 결렬
            • (1) 평양수복 전 조·명과 일본의 교섭
            • (2) 평양수복 후 명과 일본의 교섭
          • 3) 정유재란의 발발
            • (1) 조선의 일본재침에 대한 대비
            • (2) 일본의 재침
          • 3) 조·명군의 활약
            • (1) 조·명군의 활동상
            • (2) 조선 수군의 활약
            • (3) 조·명군의 추격전
          • 4) 일본군의 패퇴
            • (1) 조·명연합군의 반격전
            • (2) 조·명연합군의 4로 총공격
            • (3) 일본군의 패퇴
          • 5) 일본의 통교요청과 기유약조
            • (1) 일본의 통교요청
            • (2) 기유약조
        • 4. 왜란중의 사회상
          • 1) 군량미 조달과 농민의 실상
            • (1) 난초의 양식실태
            • (2) 명군 내원 이후의 군량조달
            • (3) 민중의 실상
          • 2) 송유진·이몽학 등의 난
            • (1) 송유진의 난
            • (2) 이몽학의 난
            • (3) 기타 민간반란
            • (4) 반란의 성격
          • 3) 항왜와 부왜·부로
            • (1) 항왜
            • (2) 부왜·부로
        • 5. 왜군 격퇴의 전략·전술
          • 1) 육전
            • (1) 관군의 군령·군사지휘권
            • (2) 전란초의 방어체제
            • (3) 관방설치와 청야책
            • (4) 의병의 지휘권과 전략·전술
            • (5) 훈련도감의 신설과 신병법
          • 2) 해전
            • (1) 해전의 전개
            • (2) 수군의 전승요인
      • Ⅱ. 정묘·병자호란
        • 1. 호란 전의 정세
          • 1) 후금의 흥기와 조선의 대응
          • 2) 숭명정책과 중립 양단외교
        • 2. 정묘호란
          • 1) 후금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2) 강화 성립
          • 3) 의병의 활약
        • 3. 병자호란
          • 1) 재침 전의 조·만관계
            • (1) 정묘화약에 대한 양국의 시각
            • (2) 모문룡과 동강진문제
            • (3) 범월쇄환의 시비
            • (4) 개시와 양국간의 마찰
            • (5) 후금의 압력과 조선의 태도
          • 2) 청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 3) 남한산성 수어와 화전양론
          • 4) 의병의 봉기
            • (1) 호남의병
            • (2) 다른 지역의 의병
          • 5) 강화 실함과 남한산성
            • (1) 강화 실함
            • (2) 인조의 남한출성
          • 6) 전후처리와 조·청관계
            • (1) 전후처리문제
            • (2) 반청의식의 고조
            • (3) 피로인 쇄환문제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부왜·부로
가. 부왜의 실태

 왜군은 침입 당초에는 정책적으로 조선사람을 회유하고 기만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본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 중에는 附倭者로서 이적 행위를 서슴지 않은 자도 있었다.

왜국은 征戍 徭役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그것을 좋아하였다. 왜적은 또 민간에게 令을 내어 회유하매 어리석은 백성들이 다 항복하면 반드시 살 수 있을 것이요, 싸우면 기필코 죽는다는 말을 믿었던 까닭에 沿海頑民들은 너도나도 削髮易眼하고 그들을 따랐으며, 곳곳에서 왜적행세를 하는 자가 倭奴는 얼마 되지 않고 그 반이 叛民이니 극히 한심스럽다(≪宣祖實錄≫권 27, 선조 25년 6월 병진).

 위의 내용은 경상우도 초유사 金誠一이 중앙정부에 알려온 왜란 초기 경상도지역 민심의 동태인데, 여기에서 보듯이 부왜자가 상당수에 달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부왜자 중에는 적의 向導가 된 자도 있었으며, 붕당을 만들고 왜말을 흉내내며 마을에 침입하여 민가의 재산을 약탈하기도 하였다.210)

 星州를 침입한 왜군은 조선인으로 判官을 삼았으며 관곡을 풀어 나누어 주고 환심을 얻으려 하였다.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받으면서 엎드려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자도 있었다고 하며,‘새 上典이 나를 살려주었다’고 외치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211) 부왜자들 가운데는 왜군의 첩자가 되어 아군에게 피해를 주는 자도 있었다.

경상도 靈山에 사는 孔僞謙이란 자는 왜란초에 附賊하여 함께 서울에 올라갔다. 자기 집에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나는 마땅히 경주부윤이 될 것이며, 못되어도 밀양부사는 놓치지 않을 것’이라 하고 상감을 범하는 말까지 하였다. 郭再祜가 그 말을 듣고 매우 분개하여 하루는 공위겸이 그 집에 돌아온 것을 알고 그를 결박지어 참수하였다(趙慶男,≪亂中雜錄≫권 1, 임진 7월 9일).

 위의 공위겸 같은 자는 대표적인 부왜자로 볼 수 있다.

 부왜자가 속출한 데는 內需司의 폐단이 컸던 데도 그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同副承旨 李石國은 開城행재소에서 직언하기를 난국을 수습하는 길은 내수사의 작폐한 사람을 찾아 처단하고 이완된 민심을 수합하는 것이 상책이라 하였다. 그는 근래 궁인들의 작폐가 크고 내수사 사람들이 宮物을 가칭하여 백성들은 원성을 누적하여 왔기 때문에 이를 원망하며 왜인과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왜군들이‘우리는 너희들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너희 임금이 백성을 학대하지 않는가’라고 하면, 조선인들도‘왜도 또한 사람이다.어찌 꼭 집을 버리고 피난할 것인가’하며 부왜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212)

 황해도 여러 고을에서도 부왜자가 발생했다. 海州를 본거지로 삼고 여러 고을을 분탕하던 왜장 黑田長政(구로다 나가마사)은 한편으로 서해민을 회유하기 위해 각처에 榜文을 배포하였다. 요지는 벼슬아치건 농민·노비든간에 자기를 따르는 자는 살려줄 것이며 배반하는 자는 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적의 점령지에 있는 민중은 살아남기 위해 부왜하는 자가 많았으나 그중에는 왜군을 가장하고 촌락에 침입하여 만행을 자행하는 자도 있었다. 해주 東面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왜군과 내통하고 민가를 분탕함이 적과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하며, 延安 사람들은 부사가 왜군을 사살하자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적이 재차 침입해 오면 부사를 결박지어 적진에 넘기겠다고 위협까지 하였다.213) 선조가 황해도 백성들이 모두 적 중에 투항했느냐고 묻는 말에, 尹斗壽가 “다른 고을은 듣지 못했으나 오직 鳳山郡은 모두 들어갔다”214)고 한 것을 보면, 봉산군에서 부왜자가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이와 같이 해서지방의 민심이 악화일로를 거듭하자 정부에서는 수습책으로 민간에 招諭敎書를 배포하고 서둘러 그 대책을 세웠다. 적에게 부역한 자라 하더라도 과오를 뉘우치고 마음을 바꿔먹는 자는 전에 지은 죄를 용서해 줄 것이며, 적에 부역한 자로서 왜군을 포획하는 자는 叛하지 않은 자와 동등하게 시상기준에 따라 후하게 상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이반자의 개심을 촉구하기도 하였다.215)

 철저히 부왜를 한 자는 앞에서 말한 바 있지만, 함경도 회령에서 반기를 든 국경인과 그의 숙부 국세필이었다. 그는 설움을 받아 오던 함경도민을 충동하여 부왜에 앞장섰고 두 왕자와 從臣 김귀영·황정욱 등을 납치하여 가등청정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諸鎭堡의 토병들도 반하여 본도 감사 柳永立이 숨어있는 곳을 탐지하고 적병을 인도하여 잡히게 하였으며, 관리들을 잡아 반란을 일으키고 적진에 투항하였으며, 남병사 李渾은 반민에게 잡혀 죽었다. 그리하여 함경도에 침입한 왜군은 피를 흘려 싸우지 않고 함경도 전역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그 후 가등청정은 部將으로 하여금 吉州 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安邊府로 내려왔으며 明川 이북의 8진은 부왜한 자들로 刑伯·禮伯의 일본 관직을 주어 다스리게 하였고, 국경인에게 判刑이란 왜직을 주었으며 국세필에게 예백을 주어 각기 회령과 鏡城을 지키게 하였다. 附敵者를 시켜 지키게 한 것은 관북뿐이 아니고 관남지역도 그러했다. 이는 “關南州鎭 또한 반민이 웅거하면서 모두 淸正의 절제를 받았다”고 한 것이 잘 말해주고 있다.216)

 다음은 도성의 실정을 살펴보기로 한다. 선조가 서울을 빠져나가자 도성의 사족들은 왜군을 피하여 먼 곳으로 피난하였고, 일반 양인이나 천민들도 흩어져 근기지역으로 나가 도성은 텅비어 있었다. 그런데 왜군이 방을 붙여 선정을 약속하면서 도성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고 그들을 따르면 재능에 따라 관직을 내리겠다는 등 회유책을 펴자 주민들이 점차 성안으로 들어와서 坊市에 가득하여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왜군은 성문을 지키며 그들이 발급한 통행증인 帖을 가진 자는 출입을 허용하여 도성민들이 모두 이 첩을 받았고, 그 중에 무뢰배들은 왜군에게 붙어 향도노릇을 하며 악한 짓을 하는 자가 많았다고 한다. 왜군은 싸우는 것을 엄금하고 싸우려는 조선 사람을 고해바치는 간사한 자에게 상을 주고 자기들을 비방하는 자는 모두 살해하였다고 한다.217) 李肯翊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이 때 성안 백성들이 모두 달아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차차 들어와서 동리와 시장이 전일과 같고 적과 섞여서 서로 물건을 매매하였다. 적이 성문을 지키고 우리 백성들로서 적의 帖을 가진 사람은 출입을 금지하지 않으므로 모두들 적의 첩을 받아 적에게 복종하여 감히 그들의 令을 거역하지 못하였다. 또한 적에게 아첨해서 가까이 하고 길잡이가 되어 못된 짓을 하는 자도 있었다. 혹 적을 죽이려고 모의를 한 사람들은 그들이 밀고하여 鐘樓 앞이나 崇禮門(南大門) 밖에서 불태워 죽이고 극히 참혹한 짓으로 시위하며 위엄을 보여서 해골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李肯翊,≪燃藜室記述≫권 15, 宣祖朝故事本末 壬辰倭亂大駕西狩).

 대부분의 도성민들은 난리가 장기화됨에 따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성 안 본가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불가피하게 倭帖을 받아야 했던 것이 다. 그러므로 첩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부왜자로 볼 수는 없다. 도성민의 극 히 일부가 부왜하여 왜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였을 뿐이었다. 문무관원으로 항부하는 자는 우대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감언에 따라 왜적에 부역한 문무관은 거의 없었다. “文官附賊者는 오직 前工曹參議 成世寧 뿐이다”218)라 한 것이 그것을 잘 대변한다.

 난초에 각처에서 있었던 부왜자들은 난이 장기화되면서 왜군들이 잔악한 본성을 드러내자 뉘우치게 되며, 의병의 봉기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210) 吳希文,≪鎖尾錄≫권 1, 壬辰南行日錄 8월.
211) 위와 같음.
212)≪宣祖實錄≫권 36, 선조 25년 5월 임술.
213) 李廷馣,≪西征日錄≫, 임진 6월 12일.
214)≪宣祖實錄≫권 28, 선조 25년 7월 병술.
215)≪宣祖實錄≫권 28, 선조 25년 7월 병술.
216) 李章熙,<鄭文孚의 義兵活動>(≪史叢≫21·22, 1977), 331∼332쪽.
217)≪宣祖修正實錄≫권 26, 선조 25년 5월.
218)≪宣祖修正實錄≫권 26, 선조 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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