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음운학 연구의 전개
훈민정음 제자 이론의 철학의 배경은 宋學 이론인 性理學이었다. 우주의 모든 현상을 태극·음양·오행 등으로 설명하면서 여기에 유교를 접합시킨 성리학은 자연히 언어문제 특히 인간의 聲音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성리설을 집대성한≪性理大全≫에는 皇極經世書 중의<皇極經世聲音唱和圖>등 聲韻學 관련 글들이 수록되어 있는바, 이들이 바로 성리학적 음운학의 가장 근원적인 참고문헌이었다. 훈민정음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던 것이다.0712)
조선시대의 음운학 연구는 첫째 표준적인 중국음 즉 華音을 나타내려는 노력으로써의 韻書 편찬, 둘째 우리 나라 한자음 즉 東音을 정리하기 위한 연구, 셋째 음운학 이론의 전개 등 크게는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그 훈민정음에 바탕을 두고서 편찬된 운서가≪東國正韻≫인바, 이는 현실 한자음과는 거리가 있는 표준적인 한자음을 가정한 발음사전으로서의 운서였다. 표준적인 화음인≪洪武正韻≫의 그것에다 俗音이라 부른 당시의 현실 北京音을 표시한≪洪武正韻譯訓≫(1455)은 대표적인 화음 중심의 운서로≪四聲通攷≫의 바탕이 되었으며 최세진의≪四聲通解≫(1517)를 낳게 하였다.0713) 이≪사성통해≫는 다시금 15세기 북경음인 속음 이외에 16세기 당시의 북경음을 今俗音이라 하여 덧붙였다. 한자의 음을 국문으로 표기하고 한자로 표기하는 反切은 넣지 않았으며 字釋 즉 한자의 뜻은≪古今韻會擧要≫에서 취하였는데 450여 物名 단어에 걸쳐서는 우리말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말하자면≪사성통해≫가 비록 화음 중심의 발음사전으로서의 운서이지만 많은 부분에서 조선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 도달하기 위하여≪홍무정운≫의 보충편이라 할 수 있는≪續添洪武正韻≫을 최세진은≪사성통해≫에 앞서 편찬하였던 것이다.≪사성통해≫의 보충편이라 할 수 있는≪韻會玉篇≫(1536)을 최세진은 또다시 내었는데, 이는 송나라 黃公紹가 지은≪古今韻會≫에 수록된 한자를 字形別로 분류하고 음과 뜻은 달지 않은 일종의 분류 字書의 성격을 지닌다.
음운학 이론은≪훈민정음≫이후로 한자 음운 중심의 분류발음사전인 운서를 편찬하면서 그 범례 등에서 단편적으로 논의한 것을 제외하면 한동안 전개되지 않았다. 성리학적 음운학에 다시금 관심을 보인 이는 최세진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徐敬德(1489∼1546)인데, 그의≪花潭集≫에 실린<聲音解>와 이를 보완 설명한<跋萬聲音解未盡處>가 그것이다.0714)<성음해>는≪皇極經世書≫의<正聲正音圖>에 대한 해설의 성격을 지닌다. 天地 형성의 원리를 用數·體數로 계산하고 다시 聲音數로 계산하는 이론적인 논의여서 언어철학 내지는 언어수리학에 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국어연구라 보기는 어렵다. 화담 자신의 독창성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관심은 張顯光(1554∼1637)의≪易學圖說≫속의<十四聲>등에서도 보인다.
음운학의 연구는 위와 같은 언어철학적 연구와는 달리 좀더 철저하게 언어학적 연구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것은 흔히 운서의 편찬으로 특수하게는 韻圖의 작성으로 결과되기도 한다. 운서는 기본적으로 牙·舌·脣·齒·喉音의 오음과 平·上·去·入聲의 사성에 따라 한자음을 분류하여 같은 부류의 음을 나타내는 한자들을 묶어 제시하는 일종의 분류음운사전인데, 한자음의 정확한 해득과 한시창작에 소용된다. 15세기와 16세기에 이룩된 운서의 편찬은 음운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것이며 조선한자음의 연구에 기초를 제공하게도 된다. 조선 중기 말엽에 본격적인 음운학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는바, 그 대표적인 업적이 숙종 4년(1678)에 쓰인 崔錫鼎의≪經世正韻≫이다.0715) 때로≪(經世)訓民正音圖說≫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 책은 經世正韻序說·韻攝圖·經世正韻五贊·聲音篇·群書折衷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요컨대 훈민정음의 원리, 역대 운서의 검토, 운도의 작성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운도의 작성인<운섭도>이다. 중국의 운서인≪切韻指南≫과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바, 가로로는 24자모를 배열하고 세로로는 等韻과 四聲을 구별하여 배열하였다.
宋學의 수리적인 易理論을 오행·음양·태극 등의 사상과 결합한≪皇極經世書≫를 원용하여 훈민정음도 이해하려 하였다. 훈민정음 28자를 28宿의 列宿之象으로 이해하되 그 중 초성 17자에 대해서는 오행과 오음의 분류에 바탕을 두고서 예컨대 牙音은 角屬·東方·木象으로 物之始生에 해당하여 첫머리에 놓는다고 보았다. 또한 28자 중 중성 11자는 태극·음양·팔괘에 바탕을 두고서 예컨대 太極兩儀八卦之象으로 ㅡ는 動이고 ㅣ는 靜이요 ㆍ는 一動一靜之間이기 때문에 이를 배합하여 중성 11자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최석정 자신의 음운체계는 초성을 淸·濁이란 자질을 그리고 중성을 闢翕의 자질을 바탕으로 구성하였는바, 이는≪性理大全≫에 수록된≪皇極經世聲音唱和圖≫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 같이 최석정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韻圖의 학문을 개척하였는데,<經世正韻五贊>(明象·辨韻·本數·稽訓·述志)을 펼쳐 음운학을 발전시키려 하였다.
이렇게 17세기 후반에 崔錫鼎에 의하여 본격화한 음운학의 연구는 18세기에 들어서서 꽃피우게 된다. 조선한자음과 중국한자음과의 대역사전인 朴性源의≪華東正音通釋韻考≫(1747), 운도의 연구에 속하는 申景濬의≪(訓民正音)韻解≫(1750), 玉篇까지 첨부한 운서인 洪啓禧의≪三韻聲彙≫(1751) 등등이 그 대표적인 업적이다. 이 시기에는 華·東音을 대조적으로 관찰함으로써 현실적인 조선한자음을 바탕으로 하게 되어 결국 자국어 인식이 싹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고 東國學이 성립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국을 전제로 한 동국학에 머문 것이지 國學에 이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