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조선 시대33권 조선 후기의 경제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7. 어·염업의 발달1) 어업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1. 인구의 증가와 분포
          • 1) 인구의 증감
          • 2) 인구의 분포
        • 2. 농업생산력의 발달과 상품작물의 재배
          • 1) 수전농업의 생산력
            • (1) 이앙법의 보급
            • (2) 새로운 품종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2) 한전농업의 생산력
            • (1) 품종의 증가와 새로운 작물의 보급
            • (2) 새로운 농업기술의 보급
            • (3) 시비법의 발달
            • (4) 윤작의 실시
          • 3) 농구와 수리시설
            • (1) 농기구의 발달
            • (2) 수리시설의 확대
            • (3) 상품작물의 재배
        • 3. 광작과 지주제
          • 1) 농촌사회 분해와 광작농의 대두
            • (1) 광작과 광작농
            • (2) 광작론과 반광작론
          • 2) 지주제의 변동
            • (1) 농촌사회 분해와 토지의 상품화
            • (2) 지주제의 변동과 그 대책
          • 3) 농업에서의 자본주의 맹아론
            • (1) 자본주의 맹아론과 내재적 발전론
            • (2) 자본주의적 관계의 발생
        • 4. 임노동의 발생
          • 1) 농민층의 분화
            • (1) 부역제의 한계
            • (2) 노동력 수요의 증대
            • (3) 노동예비군의 형성
          • 2) 임노동자의 출현
            • (1) 유민의 증대와 대책
            • (2) 고용관계의 수립
          • 3) 임노동의 양상
            • (1) 임노동의 종류
            • (2) 임노동의 조건
        • 5. 수공업의 발달
          • 1) 자영수공업체제의 형성과 발전
          • 2) 상업자본의 생산적 전회와 선대제의 발생
          • 3) 매뉴팩처의 발생
            • (1) 유기산업부문
            • (2) 야철산업부문
            • (3) 직물산업부문
            • (4) 광업부문
        • 6. 광업의 발달
          • 1) 18세기「별장」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성립과 군수광업의 몰락
            • (2)「별장」제하 은점의 경영 실태
          • 2) 18세기말 19세기 전반「물주」제하의 광업 실태
            • (1)「별장」제의 폐지와「수령수세」제의 성립
            • (2) 물주제하의 광산경영 실태
        • 7. 어·염업의 발달
          • 1) 어업
            • (1) 상품화폐경제의 발달과 어업의 발달
            • (2) 수산물의 종류
            • (3) 어구·어법
            • (4) 어전·방렴류
            •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 (6) 수산양식업
            • (7) 수산제조업
          • 2) 염업
            • (1) 소금과 염업의 중요성
            • (2) 소금 생산방법
            • (3) 제염기술의 발전
            • (4) 소금의 유통구조
            • (5) 염업에 대한 정책
        • 8. 운수업의 발달
          • 1) 육상운송
            • (1) 조선 후기 역의 운영 실태
            • (2) 파발제의 성립과 발달
            • (3) 역마확보의 변화와 고립제
          • 2) 수상운송
            • (1) 관물의 운송
            • (2) 사물의 운송
          • 3) 원과 주막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상인층의 성장과 도고상업의 전개
          • 1) 관상도고의 활동
            • (1) 시전도고의 활동
            • (2) 공인의 활동과 공인자본의 성격
            • (3) 경·영주인과 영저도고의 활동
          • 2) 사상도고의 활동
            • 가. 서울지역에서의 사상의 활동과 신해통공
            • 나. 서울 주변지역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다. 상품생산지 및 집산지에서의 사상도고의 활동
          • 3) 반도고활동의 전개와 상업계의 동향
            • 가. 관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나. 사상도고에 대한 반도고운동
        • 2. 상품의 유통
          • 1) 농촌장시의 발달
            • (1) 상업적 농업과 농촌수공업의 발달
            • (2) 육상교통의 발달과 장시의 증가
            • (3) 농촌장시의 발달과 시장권 확대
          • 2) 포구상업의 발달
            • (1) 해상교통의 발달과 포구시장권의 형성
            • (2) 경강포구의 상업발달
            • (3) 외방포구의 상업발달
            • (4) 포구상업세력의 성장과 상품유통
          • 3) 상업도시의 형성
            • (1)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 (2) 서울의 상업도시로의 성장
            • (3) 지방 상업도시의 출현
          • 4) 상업자본의 축적
            • (1) 시전상업체제의 변동과 사상의 성장
            • (2) 도고상업과 상업자본의 축적
            • (3) 상업자본의 생산자 지배
        • 3. 금속화폐의 보급과 조세금납화
          • 1) 금속화폐의 보급과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1) 동전유통 정착의 경제적 기반
            • (2) 17세기말∼18세기 중엽 금속화폐의 유통
            • (3) 18세기 후반∼19세기 중엽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2) 조세금납화와 봉건적 수취체제의 해체
            • (1) 조세금납의 성립조건-17세기 수취제도의 모순
            • (2) 17세기말∼19세기 중엽 조세금납의 전개
            • (3) 19세기 전반 화폐수탈의 급증과 사회적 모순의 심화
        • 4. 대외무역의 전개
          • 1) 청과의 무역
            • (1) 17세기 부연역관의 청·일 간 중계무역
            • (2) 17세기말 18세기 전반 무역별장의 등장과 역관·상인 간의 대립
            • (3) 18세기 후반 19세기 전반 연상무역의 발전과 산업부문 침투
          • 2) 일본과의 무역
            • (1) 무역의 범주
            • (2) 상인
            • (3) 상품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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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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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5) 대규모 어업의 발달

 조선 후기에는 어구가 대형화하고 어업 경영규모가 큰 대규모 어업이 발달하였다. 대규모 어업은 어전 어업이나 방렴 어업과 같은 발 어구를 사용하는 어업과 어망을 사용하는 망어업에서 발달하였다.

 ≪균역사목≫에 의하면, 전라도의 어전은 대·중·소의 3등급으로 나누어 과세하였는데 大箭은 발의 길이가 500∼600파 혹은 300파, 임통의 수심은 2丈에 이르렀다. 양쪽 날개를 이루는 발의 길이가 최대 900m에 달하고 수심도 상당히 깊은 곳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이같은 어전으로 주로 조기와 청어를 잡았기 때문에 그것들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였다. 황해도의 어전도 규모가 컸다.≪균역청사목≫에 의하면, 황해도의 청어 어전은 漁利의 다소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최고액이 250냥이었다. 잡어 어전의 최고액이 20냥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청어 어전은 그 규모가 매우 크고 어획량도 엄청나게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길이가 근 1㎞에 달하는 것도 있었던 대형 어전은 경영에 많은 자금이 소요되었다. 영조 27년(1751) 충청도 관찰사 李益輔는 상소를 올려 균역법 실시 이후의 어세의 중과에 따르는 폐단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어전·배·鹽盆을 물론하고 각 관청 혹은 富民이 모두 그 본 임자가 되어 어전의 기계, 배의 노, 염분의 鉤鐵 등의 물건을 맡아서 변통하여 준비하였는데, 거의 4, 5백 냥을 들여야 어전을 설치하고 배를 건조하며 염분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본 임자가 주장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소위 본 임자가 모두 손을 떼고 물러나고 있습니다. 저 船人·漁漢·鹽夫는 다 아침에 모였다가 저녁에 흩어지는 거지와 다름없는 사람들로서 그러한 일 중의 하나에 노역을 하며 입에 풀칠을 하는 데 지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미 物主가 없어진 마당에 허다한 경비를 그들이 무슨 수로 변통하여 마련해 내겠습니까. 실상이 이러하므로 벌써 이산하여 도피한 자가 있어, 배나 어전은 자연히 파괴되기 전에 스스로 파괴되고, 염분 역시 陳廢되고 설치되지 않습니다(≪承政院日記≫1067책, 영조 27년 4월 28일).

 균역법 실시 이전에 어전이나 염분은 궁가·관청·토호 등에 의하여 私占되어 있었는데 어전의 기계(지주용 말목, 발 등), 배 등을 마련하는 데 400∼500냥이 소요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어전의 규모가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대규모 어전의 경우에는 어전의 어장주가 어전 어업을 직영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균역법의 실시를 계기로 사점 어전이 모두 혁파되어 어장주인이 어업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고 한다.

 경상도의 방렴이나 어조도 규모가 컸다. 정조 원년(1777) 좌의정 金尙喆은 임금에게 여쭌 말 가운데, 통영에 소속시킨 경상도 오른쪽 연안 어전은 物力을 마련하기 어려워 熊川의 방렴 3곳과 巨濟의 어조 3곳만 골라 시설을 하였는데, 지난 해에 든 물력이 租 390석, 돈 2,310냥이었고, 이듬해 겨울의 어조와 방렴의 물력의 경비가 700여 냥에 달할 것인데, 6곳에서 얻는 이익은 500냥에도 미달한다고 했다.0591) 이 어장은 영조 51년 균역법 시행 전의 소유주였던 통영에서 되돌려 받은0592) 후 직영한 것인데 3개의 방렴과 3개의 어조, 즉 정치망을 설치하는 데 막대한 물력이 소비되었던 것이다. 18세기 중엽에 쌀 1석이 7냥이었던0593) 것을 참작하여 조 390석을 쌀 195석으로 치고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1,365냥이 된다. 처음에 신규로 설치할 때에는 비용이 많이 드는데 1개당 평균 600냥 정도가 들었다면 그 규모가 매우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어구로 주로 대구와 청어를 잡았으므로 그 어획량이 많았다.

 함경도에 설치된 방렴도 규모가 컸다. 정조 14년(1790) 함경북도 암행어사 徐榮輔의 書啓에 보이는 別單에 의하면, 방렴수가 많아져 각 방렴에 잡히는 물고기는 적어졌는데 방렴에 드는 人費는 수백 냥에 달하고 이는 모두 빚으로 마련한다고 하였다. 또 방렴마다 균역세를 내야 하는데 한번 失利하면 재산을 기울여 빚을 갚고, 里徵·族徵으로 세금을 납부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방렴 하나를 설치하는 데 연간 잡는 소가 數百千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였다.0594) 방렴어업을 경영한 사람은 원근에서 모인 무뢰배였고 이들은 公私 債錢을 내어 방렴을 설치하였다고 한다.0595)

 중선망 어업은 가장 중요한 어선 어업의 하나로서 어선과 어망의 규모가 컸고 종사 어부의 수도 많았다.≪임원십육지≫에는 중선망의 제작 방법과 사용 방법이 비교적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 규모를 보면, 벼실을 꼬아서 만든 포대처럼 생긴 자루그물은 길이가 45파였고, 그물 입구의 둘레가 48파였다.0596) 길이가 45파라면 약 68m이고, 망구 둘레가 48파였다면 망구 지름이 약 23m에 달하였다. 19세기초에 이미 초대형 어망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중선 어선은 이러한 대형 어망을 하나도 아닌 2개를 어선 양현의 밑쪽에 달고 조업하였다. 이 어업의 경영에 대해서는 濱海의 富戶가 1천 냥을 들여 배를 건조하고 그물을 떠서 고기를 잡는데 1년의 어획량이 아주 많아 巨萬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규모의 어망으로 서해안에서 조기와 청어를 잡았으므로 그 어획량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후릿그물에도 규모가 큰 것이 있었다. 칡을 캐어 그 덩굴 껍질을 벗겨 가늘게 꼬아서 큰 그물을 만드는데 길이가 수십 자가 되고 너비가 수백 파에 이르기도 하여 이로써 강물을 막기도 하고 조수가 왕래하는 해안을 포위하기도 하는데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았으며 豪富는 그물을 명주실로 만들기도 하였다고 한다.0597) 수백 미터나 되는 대규모의 후릿그물이 있었던 것이다. 멸치는 이러한 대형 후릿그물을 사용하여 잡기도 하였으므로 다획성 대중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명태는 원래 주낚으로 잡았으나≪난호어목지≫에서 함경도의 명태는 12월부터 어망을 설치하여 잡기 시작한다고 한 것을0598) 보면 19세기에는 어망으로도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구한말에 걸그물이 명태의 주어구의 하나였던 것을 보면 위에서 말한 어망은 걸그물이었을 것이다. 명태가 대량으로 어획되었던 것을 보면 이 걸그물도 규모가 매우 큰 것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늦어도 18세기 후반부터는 화폐와 상품이 농촌사회 전반에 침투되어 교환 경제가 발달하였다. 균역청 해세가 화폐로 납부하는 金納制로 된 것도 이를 반영한다. 이에 따라 상품생산으로서의 어업이 크게 발달하였을 것이다. 그 대부분은 가족 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영세 漁家 단위의 비자본제적 단순 상품 생산이었으나, 가족 노동의 범위를 넘어선 노동력이 필요한 대규모 어업에서는 그 경영형태가 상품화된 노동력에 의존하는 자본제적 어업 경영으로 발달하였다. 그런데 대규모 어업이라고 해서 모두 자본제적으로 경영된 것은 아니었다. 복수의 어가가 횡적으로 결합하여 공동 출자, 공동 노동, 공동 분배의 형태로 경영할 경우는 어업 경영규모가 크더라도 그것은 확대된 어가 경영에 불과하였다. 영조 7년(1731) 동부승지 李匡世의 계품에 의하면, 방렴 어업에 있어서 海夫輩가 힘을 합하여 돈이나 재물을 공동으로 모아 가을에 방렴을 설치하여 물고기를 잡는다고 하였는데,0599) 이는 공동 경영형태였을 것이다. 군영이나 관청에서 대규모 어업을 직영하는 경우도 자유 노동자를 고용하여 어업을 경영하는 자본제적 경영은 아니었다.

 원근의 무뢰배가 모여 공채나 사채를 내어 방렴을 경영한 것과 같은 경우는 그 경영형태가 자본제적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에 어업 경영자는 평민 출신의 기업가였을 것이다. 그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은 농민층 분해과정에서 발생한 무산노동자로서 경영자와 신분적 주종관계가 없는 자유 노동자였음에 틀림없다. 이 이외에 富民이나 豪富가 경영한 대규모 어업에서도 대부분 자본제적 경영을 하였을 것이다. 조업 인원이 20명 이상이나 필요하였던 중선망 어업 같은 것은 규모가 큰 자본제적 어업이었을 것이다. 旅閣이나 客主, 수산물 운반업자 등이 어업 유통부문에서 前期的 상업자본을 축적하여 이를 산업자본으로서 어업에 투하하여 자본제적 어업을 직영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또 그 사례가 드물었을지는 몰라도 영세한 어민이 자본을 축적하여 어업 경영규모를 확대하고 이를 자본제적으로 경영하는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0600)

0591)≪備邊司謄錄≫158책, 정조 원년 5월 16일.
0592)≪備邊司謄錄≫158책, 정조 원년 3월 27일.

≪正祖實錄≫권 7, 정조 3년 3월 계묘.
0593)≪續大典≫권 2, 戶典 收稅.
0594)≪日省錄≫정조 14년 4월 30일.

≪正祖實錄≫권 30, 정조 14년 4월 경진.
0595)≪正祖實錄≫권 16, 정조 7년 11월 정유.
0596) 徐有榘,≪林園十六志≫佃漁志 권 3, 漁條網.
0597) 徐有榘,≪林園十六志≫佃漁志 권 3, 弋獵 搪網.
0598) 徐有榘,≪蘭湖漁牧志≫魚名攷 海魚 明鮐魚.
0599)≪備邊司謄錄≫190책, 영조 7년 8월 30일.
0600) 자본제적 어업 경영에 관해서는 朴九秉,≪韓國漁業史≫(正音社, 1975), 177∼184쪽 참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