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시장

가) 무역 장소

　조선 전기만 하더라도 일본사신의 上京路 주변에서 무역이 이루어지던 것을 후기에는 조선정부가 왜관 한 곳으로 시장을 제한했다. 임진·정유왜란 때 일본사신의 상경로가 침략로로 악용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정부는 일본인의 상경을 금지하였다. 또 조선정부는 양국 상인들의 밀거래를 통한 국가 기밀의 누설을 염려하여 무역 장소를 한 곳으로 제한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무역 장소가 왜관 가운데서도 開市大廳이라는 곳으로 한정되었다. 따라서 왜관 안이라 하더라도 개시대청을 벗어나서 하는 교역행위는 모두 밀무역으로 간주되어 엄한 처벌을 받았다. “가격 협상을 핑계로 왜관의 각 방에 몰래 들어가 거래를 하는 潛商 행위를 엄하게 다스린다”는 규정이 여러 사료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밀무역을 통제하려는 조선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1264)

　무역 장소를 개시대청으로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7세기 중엽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사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던 시기이기도 하며, 대규모 밀무역사건이 발각되어 그것이 양국간 외교현안으로 등장한 때이기도 하고, 또 왜관이 豆毛浦에서 草梁으로 옮겨지는 시기에 해당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무역통제 정책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밀무역은 양국 상인에 의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왜관 안에서는 물론이고 왜관 밖에서도 밀거래가 일어나고 있었다. 왜관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야채와 생선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허용되었던 아침장(朝市)에서도 양국 민간인들 사이에서 불법적인 거래가 발생했다. 심지어는 바다 한 가운데 배를 대놓고 몰래 교역을 하기도 했다.1265)

나) 무역 일자

　조선정부는 일본과 무역을 할 수 있는 날짜를 지정해 놓고 있었다. 공무역은 조선정부와 대마번 사이의 교역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역관(訓導·別差)과 대마번의 代官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무역일자를 협의하여 정했지만, 사무역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정부는 임진왜란 이전에는 한 달에 3번(3·13·23일) 사무역을 개최하도록 했는데, 임란 이후에는 매월 6회(3·8·13·18·23·28일)로 開市日을 늘렸다.1266) 게다가 불가피한 사정으로 정해진 날짜에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따로 別市(代市)가 허용되었다. 별시를 포함하여 지정된 개시일이 아닌 날짜에 교역하는 것은 밀무역으로 간주하여 엄격히 처단하였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역 일자와 관련해서는 다음 두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당시 조선과 일본은 모두 태음력을 사용했지만 曆法체계가 서로 달랐는데, 무역을 개최할 때 어느 나라의 역법을 기준으로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예컨대 헌종 12년(1846)의 경우 조선의 8월 28일이 일본에서는 27일이었다. 헌종 15년에도 조선의 11월 3일이 일본에서는 2일이었다.1267) 이런 경우 어느 나라의 날짜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인데, 대체로 조선의 역법체계에 맞추어 시장을 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1268)

　둘째, 5일에 한 번씩 열리게 되어 있는 사무역의 일자가 왜관주변의 場市 일자와 어떤 관련을 갖느냐 하는 점이다. 예컨대 동래부 장시의 개시일을 살펴보면 禿旨場 1일·6일, 邑內場 2일·7일, 左水營場과 龜浦場 3일·8일, 釜山場 4일·9일로서,1269) 왜관과 개시일이 동일한 장시는 좌수영장과 구포장의 두 곳이었다. 따라서 독지장(1·6일)→읍내장(2·7일)→왜관(3·8일)→부산장(4·9일) 등으로 연결되는 유통망 속에서 대일무역이 운영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시의 횟수이다. 당시 사무역은 월 6회에 걸쳐 개최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다. 즉 별시를 포함하여 실제로 개시가 이루어진 일수와 개시의 규정일수를 비교한 開市率을 계산해 보면 사무역이 얼마나 빈번하게 열렸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1270) 다음＜표 4＞는 헌종 10∼15년간의 개시 상황을 나타낸 것인데, 6년 동안 연평균 24.4%의 개시율을 기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평균 개시율로 볼 때 18세기 초반까지는 70% 내외에 머물러 있었으나,1271) 그로부터 100여년 뒤인 19세기 초반에는 개시율이 20%대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개시율의 감소만으로는 사무역 규모의 감소를 주장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무역이 열리는 빈도는 18세기 초반보다 19세기 전반에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