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국민참정권론
독립협회는 국민주권론에 근거하여 國民參政權論을 제기하였다.
독립신문은 그 논설에서 국민의 직무로 ①정부가 애군애민하는 정부인가의 여부를 감독하는 직무, ②애군애민하는 옳은 법령을 국민이 준행토록 권장하는 직무, ③정부가 애군애민하지 않으면 애군애민하는 정부로 만드는 직무 등 세 가지의 직무를 제시하였다.0719) 이와 같은 국민의 국정감독의 직무와 준법 권장의 직무 및 정권교체의 직무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정치참여의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제시될 수 있는 사항들이다.
독립협회는, 인민은 군주와 지배층에게 그 운명이 내맡겨진 단순한 통치의 대상이 아니고,0720) 국가의 주인으로서 주권을 가진 정치의 주체라고 인식하여 국민참정권을 주장하였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애국이란 국가의 공익과 동포의 권리를 강구하는 것이므로, “이 (애국하는)마음을 바로 세우게 함은 이 백성을 정치 교육상에 몰아넣어 나라 정략상에 참여하는 권리를 주는 데 있다”고 하여,0721) 국익의 증진과 민권의 보장을 위해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한편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의 길은 개화자강에 있고,0722) 진정한 문명개화는 국민이 주인이 되어 추진해야 가능하다0723)고 믿은 독립협회 회원들은 문명은 세계의 大勢라 하고, “正理는 가장 뒤에 이기고 이로울 자이라 하니 대한 인민들은…정리를 방패와 창으로 삼고 나라 일을 담당하라”0724)고 하여, 국민이 주인이 된 문명개화의 실현과 국가자주권의 확립을 위하여 국민이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丁若鏞은, 하늘 아래의 모든 인간을 수평적 관계로 인식하는 기반 위에서, 모든 통치자는 민의에 위해 선출되어야 하고 통치자가 민중을 위한 정치를 베풀지 못하면 민중에 의해 개선되어야 하며, 민중이 법률제정에 참여해야 민중의 이익에 부합되는 법률이 제정된다고 하는 국민참정 의식을 보여주었다.0725) 개화기의≪漢城旬報≫는 구미의 정치체제를 소개하는 가운데, 삼권분립과 입헌정체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의회제도를 찬미하는가 하면, 구미 여러 나라의 민선에 의한 지방자치제를 선망하여 국민참정권 의식을 간접적으로 내세웠다.0726) 박영효도 상소를 통하여 “縣會의 法을 세워 인민으로 하여금 인민의 일을 의논케 하여 公私 양쪽의 편리를 얻게 할 것”0727)을 건의하였다. 갑오개혁 추진자들은 민의가 반영되는 里會·面會·郡會를 구성하고, 里長은 里民이, 면장은 면회에서 圈選하도록 하는 지방자치제안을 법제화하여 초보적인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실현을 시도하였다.0728) 이러한 맥락에서 독립협회의 인민참정권사상이 정립되어 갔던 것이다.
독립협회는 집회활동을 통하여 국정에 대한 비판과 감독을 행동화함으로써 국민참정권을 부분적으로 실현코자 하였다.0729) 1898년 2월 27일 독립협회는 회원과 방청객 수백 명이 참석한 집회에서 러시아의 絶影島 석탄고기지 조차 요구를 격렬하게 성토하고, 총대위원을 선출하여 절영도 조차문제를 문의하는 공한을 정부에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이 사실에 대하여 윤치호는 “민주주의의 물결이 한국의 정치에 작용하기 시작하였다”고 평가하였다.0730) 독립협회는 그 해 3월 10일 이래로, 한국 최초의 근대적 민중집회인 만민공동회를 배경으로 자유민권운동을 전개하여 국민참정권을 실현코자 하였다.
한편 독립협회는 국민의 참정권을 제도적으로 실현코자 하였다. 독립협회 회원들은 간도와 연해주의 한인 流移民들이 투표에 의해 직접선거로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하여 한인지역에 자치를 시행하고 있음을 소개하고, 국내에서도 민선에 의해 지방관을 선출하면 지방민을 위한 지방행정이 이루어질 것이라 하여, 인민 투표에 의한 지방관 선거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0731) 국민참정의 요체는 국민이 그 대표를 선출하여 국회를 만들고,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를 감독하는 민선의회의 존재에 있다. 독립협회의 국민참정권 실현을 위한 노력도 문명국가의 선례에 따라 의회제도를 마련하는 데 집중되었다. 독립협회는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 1898년 11월초에 관선 의석과 민선 의석을 반반씩 규정한 의회식 중추원관제를 제정케 하는 데 성공하였다. 민선이 가미된 의회식 중추원관제의 반포는 제한적이나마 우리 역사상 국민참정권을 최초로 공인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처럼 독립협회는 민선 의회제도와 지방관 선거제도의 확립을 통하여 국민참정권을 실현코자 했는데, 의회설립운동은 그 국민참정운동의 핵심이었다.
0719) | ≪독립신문≫, 1898년 3월 3일,<대한인민의 직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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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 The Independent, May 19, 1898, An Honest Confession. |
0721) | ≪독립신문≫, 1898년 12월 17일,<나라 사랑하는 논>. |
0722) | 愼鏞廈, 앞의 책, 160∼161쪽. |
0723) | ≪독립신문≫, 1898년 3월 24일, 논설 및 1897년 8월 7일, 논설. |
0724) | ≪독립신문≫, 1898년 11월 11일,<문명은 세게 바람과 조수>. |
0725) | 趙 珖,<韓國近代文化의 實學的 基礎>(≪韓國史學≫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 22∼23쪽. |
0726) | 姜在彦,<개화파에 있어서 자유민권사상의 형성>(≪한국근대사상사 연구≫, 한울총서 13, 1983), 91∼93쪽. |
0727) | <朴泳孝 上疏文> 중 正政治使民國有定條. |
0728) | 宋炳基·朴容玉·朴漢卨(편),≪近代韓末法令集≫1(대한민국 국회도서관, 1970), 600∼604쪽. |
0729) | 愼鏞廈, 앞의 책, 201쪽. |
0730) | 尹致昊,≪尹致昊日記≫5, 1898년 2월 27일. |
0731) | ≪독립신문≫, 1897년 1월 16일, 논설. 愼鏞廈, 앞의 책, 203∼204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