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45권 신문화 운동ⅠⅢ. 근대 문학과 예술2. 근대 예술의 발전1) 음악(2) 근대음악사의 전개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1. 근대 교육의 성립
          • 1) 근대 교육 성립의 역사적 배경
            • (1) 개화정책의 추진과 신교육 수용론 대두
            • (2) 동도서기주의적 신교육 수용의 실패
            • (3) 선교사의 교육활동과 교육평등의식 계몽
            • (4) 변법개화파의 국민교육론 전개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의 성립
            • (1) 교육제도와 관리등용제도의 개혁
            • (2) 근대적 국민교육제도 정립
        • 2. 근대 교육의 발전
          • 1) 근대 교육의 이념
            • (1) 실용주의 교육 지향
            • (2) 자강주의 교육
          • 2) 근대 학교의 설립
            • 가. 정부의 근대학교 설립
            • 나. 전·현직관료 및 황제 측근세력들의 사립학교 설립
            • 다. 개항장 상인 및 유지 신사들의 사립학교 설립
            • 라. 요호·부민·유생 층의 학교 설립
            • 마. 선교사들의 학교 설립
            • 바. 구국계몽단체·학회 및 관련인사들의 학교 설립
            • 사. 불교와 천도교 종단의 사립학교 설립
          • 3) 근대 학교의 교육내용
        • 3. 근대 교육의 확대
          • 1) 통감부의 교육 침략
            • (1) 우민화교육 방침
            • (2) 동화정책의 방법으로서의 보통학교 확장
            • (3) 일본어 보급
            • (4) 교과를 통한 친일교육
            • (5) 일본인 교원배치
          • 2) 민족사학의 발전과 설립 이념
            • (1) 민족사학의 발전
            • (2) 민족사학의 설립이념
          • 3) 여자 교육의 발전
            • (1) 미션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2) 관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3) 민간인 사립여학교의 설립과 교육
          • 4) 고등교육의 성립
            • (1) 민립대학의 설치운동과 경성제국대학의 설립
            • (2) 기독교계 전문학교의 대학승격운동
          • 5) 교육내용의 추이
            • (1) 애국교과와 훈화를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2) 창가와 체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내용
        • 4. 교육구국운동의 추진
          • 1) 근대 교육의 성격
            • (1) 근대 교육의 성격
            • (2) 근대 민족 교육의 확대
          • 2) 구국교육운동의 실태
            • (1) 사립학교의 설립
            • (2) 설학취지문의 검토
            • (3) 간도지역의 민족교육운동
            • (4) 역사교육의 확대
            • (5) 체육교육의 보급과 운동회의 개최
            • (6) 애국가와 독립가의 보급
        • 5. 근대적 교과서의 편찬
          • 1) 근대 교육 성립기의 교과서
          • 2) 근대 교육의 발전과 교과서
            • (1) 근대학교의 교육내용<교과목>
            • (2) 정부의 교과서 편찬
            • (3) 민간인에 의한 교과서 편찬과 실태
            • (4) 교과서의 내용
          • 3) 통감부하의 교과서
            • (1) 일제의 교육침략정책
            • (2) 학제의 개편
            • (3) 통감부의 교과서 통제
            • (4) 구국교육운동과 민간의 교과서 편찬
            • (5) 교과서의 실태
            • (6) 교과서 사용 실태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1. 근대 학문의 수용
          • 1) 서양 근대 학문의 세 수용통로
          • 2) 서양철학의 수용
          • 3) 사회진화론의 수용
          • 4) 사회과학의 수용
          • 5) 서양 인문사회과학 수용의 특징과 문제점
        • 2. 한국어 연구
          • 1) 언문일치의 첫걸음
            • (1) 두 문체의 대립
            • (2) 국한문체
            • (3) 국문체
          • 2) 초기의 국문 연구
            • (1) 지석영의<국문론>과<신정국문>
            • (2) 리(이)봉운의≪국문졍리≫(국문정리)
            • (3) 주시경의<국문론>과 그 뒤의 연구
            • (4) 이능화의<국문일정의견>
          • 3) 국문연구소의 업적
            • (1) 국문연구소에 관한 자료
            • (2) 개설의 동기와 목적
            • (3) 직원과 운영
            • (4) 사업의 경과
            • (5)<국문연구 의정안>
            • (6) 각 위원의 연구안
          • 4) 문법의 연구
            • (1) 서양인의 연구
            • (2) 유길준의≪대한문전≫
            • (3) 주시경의≪국어문법≫
            • (4) 어윤적의 연구
            • (5) 김희상의≪초등국어어전≫
          • 5) 주시경의 국어 연구
        • 3. 한국사 연구
          • 1) 연구의 필요성
          • 2) 근대 한국사 인식의 추이
            • (1) 실학시대 후기에서 개항기의 역사학
            • (2) 개화기 계몽주의 역사학
          • 3) 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1) 일제 식민주의 사학의 침투
            • (2) 근대민족주의 사학의 성립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1. 근대 문학의 발전
          • 1) 개화기의 시대적 과제와 문체, 문학장르의 관련
            • (1) 위정척사파
            • (2) 온건보수파
            • (3) 개화자강파
            • (4) 일본체험파
            • (5) 민중계몽파
            • (6) 친기독교 개화파
          • 2) 개화기의 시가 장르
            • (1) 애국·독립가
            • (2) ‘사회등’ 가사를 비롯한 우국가
            • (3) 민요 개작
            • (4) 개화기의 시조와 가사
            • (5) 신체시
          • 3) 개화기의 서사 장르
            • (1) 신소설
            • (2) 역사·전기 소설
            • (3) 토론체 소설
        • 2. 근대 예술의 발전
          • 1)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구성
            • (2) 근대음악사의 전개
            • (3) 새로운 과제
          • 2) 미술
          • 3) 연극과 영화
          • 4) 무용
            • (1) 무도의 등장
            • (2) 권번춤의 무대화와 가무극의 번성
          • 5) 체육
            • (1) 학교체육의 전개양상
            • (2) 근대 스포츠의 소개
            • (3) 체육단체 결성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Ⅱ. 언론
      • Ⅲ. 국학 연구
      • Ⅳ. 종교
      • Ⅴ. 과학과 예술
      • Ⅵ. 민속과 의식주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근대음악사의 전개
가. 제1기

 근대음악사 전기 제1기는 음악사회가 민족음악으로서 자각과 실천을 전개하는 1860년부터 1876년 개항까지 17년간의 음악사이다. 두 가지 점에서 그 이전의 시기와 크게 달랐다. 하나는 안으로 국가권력의 본질을 이룬 토지소유원리와 성리학적 정치체제가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세계 제국주의의 출현에 의한 민족국가가 위기에 직면한 시기이었다. 제1기는 1862년부터 전국 70여 개 지역에서 농민항쟁이 일어나 매년 지속되다가 마침내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날 정도로 신분제적 토지소유원리의 모순과 그 성리학적 정치체제의 통치이념이 급속히 와해되는 시기이었다. 또한 조선은 19세기 60년대에 대외적인 충격으로 민족적 위기감이 휩싸인 시기이었다. 1860년에 중국이 영국과 프랑스간에 북경조약을 체결하여 반식민지화로 전락되고, 조선 역시 제국주의의 이양선 출몰로 더 이상 세계질서의 예외지역이 아니었음이 민족적 현실이었다. 1866년의 조불전쟁과 1867년의 조미전쟁과 같이 민족국가의 위기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가) 기층민중들의 새로운 음악전개

 농민들은 봉건지배체제에 대한 저항 등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노래들을 이 기간부터 조직적으로 만들어 유포하였다. 1861년 경상도 단성에서 “丹城이 哭聲이 되었네”와 比安에서 “참관이 거관하니 비안이 불안하네”와 같은 저항노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노래들은 모두 봉건적 조세수탈과 지대수탈 세력에 대한 저항의 노래이다. 또<居昌歌>가 1862년 농민들의 조직적인 항쟁을 예고하며 불려지고 있었다. 1865년 경복궁 중건시<경복궁타령>이 기층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불려지면서 지배층의 수탈현실과 고통받고 있는 기층민중의 징발과 경제수탈을 음악적으로 비판한다. 이 현장에 동원된 예인집단, 곧 무동패·중광대패·광대패·초막산민·선소리패 등이 공연하였다. 또 1861년 동학도들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북을 치고 나발을 부는’ 풍물이 항쟁의 음악으로 전개되었다. 한편 신청출신들은 ‘죽기를 작정하고 다른 곳으로 회피’하는 것도 모두 조선시대의 수취제도의 모순에서 나왔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연명하여 신분제도의 철폐를 제기하거나, ‘전주 통인청 대사습’을 통하여 신분상승을 꾀하기도 하였다.

 신청(재인청)출신과 농민출신으로 고향을 등진 떠돌이 예인집단들이나 그 밖의 붙박이 예인집단들도 鄕市의 발달에 따라 도시의 상설 무대로 진출하여 상주하려는 변화가 일어났다. 전국 1,061개의 鄕市 가운데 최대 시장이었던 송파에서는 산대를 상설화하여 시장경제가 활성화되는 계기로 삼았고, 그 계기를 다른 예인집단에게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중반 이후의 전국에 걸쳐 있는 5광대와 들놀음(野遊)패는 물론이고 신청이 참여한 각종 연행과 의식이 관아의 제당·동헌·객사 등지에 진출하여 공연되었다.

 격상된 예술적 지위만큼이나 기층민중 출신들의 예술가들에 대해 새로운 역사평가를 시도하는 것도 이 시기의 변화된 역사인식이었다. 이미 1844년 趙熙龍의≪壺山外記≫뿐만 아니라, 1862년 직하시사 출신 劉在建의≪里鄕見聞錄≫은 308명의 이향인들 중에 음악인들을 평가하였다. 퉁소·비파·거문고 연주자이자 창작가(김성기 新譜)로 활동한 천민출신의 金聖基에 대한 평가가 그것이다. 또 1866년에 직하시사 출신의 李慶民의≪熙朝跌事≫도 김성기와 함께 생황 연주의 임희지를 평가하였다.

나) 중인들의 중개성과 새로운 양상

 앞서의 유재건과 이경민은 중인출신들로서 기록을 남긴 것은 성리학적 문화권에 대한 중개성이었다. 5광대와 들놀음, 또 떠돌이 예인집단과 신청출신들의 광대나 악공들의 연행을 관아로 끌어들여 사대부의 가족들까지 참여시킨 것도 후견인 역할을 한 중인들이었다. 이들은 수탈자로서 규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봉건사회의 모순을 자신들에게만 책임지울 수 없으므로 지배층과 연결시켜 이득을 취하려는 데서 그 중개성이 가능했다. 또 ‘전주 통인청 대사습’ 역시 중인들로 구성된 통인청이 신청출신들을 관장하여 그 음악문화를 사대부로 중개하고 있었다. 중인출신으로 향아전이었던 申在孝가 비록 기층민중들의 비판적 풍자성으로 가득한 판소리를 떠나서 안동 김씨와 대원군 정권의 보호를 받으며 진채선과 허금파 등의 여류 명창 후견인 역할을 하며 판소리 개작을 한 것도 권력층에의 중개성이었다. 그리고 서울의 선혜청과 병조는 물론 호조·내수사의 서리 등 경아전들이 악공들을 불러내어 풍악을 크게 개최하는 양상은 조선 후기 이래의 흐름이지만, 이 시기에 후견인 역할이 더욱 부각되어 있었다. 특히 제1기 이후 서울이 소비적·향락적 도시로 변해 가면서 한문문화권에 일찍부터 편입된 중인출신들이 18세기 이래로 詩會의 역사를 마지막으로 장식하며 개화사상가로 진출한다. 1870년대 말 청계천의 광교를 중심으로 六橋詩社를 결성하였고, 1876년에는 박효관과 안민영의≪가곡원류≫가 나왔다. 이 가곡집엔 김윤석과 하규일 등이 참여하였고, 때로는 인왕산 근처에 필운대라는 歌臺에 올라 가곡을 불렀다.

다) 제국주의 침략과 음악 대응

 밖으로부터 서양제국주의의 이양선이 빈번하게 나타나고, 1860년 영국과 프랑스 함대가 북경을 점령하여 청나라를 굴복시키자 조선은 불안에 휩싸인다. 안으로는 왕권 쇠약, 정치기강의 문란, 삼정 문란을 비롯하여 국가재정원인 세원이 파탄으로 이어지면서 천주교 교세가 확장되자 사회적 불안이 커졌다. 천주교가 西學의 하나이었기 때문에 이를 대응하려는 東學이 1860년에 창도되면서 전국의 기층민중들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밖으로 서학에 맞서고 안으로 봉건체제를 일신하기 위한 동학은 그들의 신앙가사인 ‘동학가사’로 근대화를 모색한다. 1860년부터 1863년 사이에 만들어진 동학의 신앙가사집인≪용담유사≫가 기존의 민요에 ‘노래가사 바꾸어 부르기’나 ‘즉흥적으로 얹혀 부르기’로 불려진다. 특히<칼노래>는<칼춤>을 추며 불렀다. 국가는 이 노래와 춤을 반체제의 노래와 춤으로 규정하고 1864년 崔濟愚(1824∼1864)를 처형시켰다. 또 1876년 전라도 장흥에서 李中銓(1825∼1893)은<장한가>라는 유교가사를 만들어 불렀고, 1866년에 서장관으로 북경을 다녀온 洪淳學(1842∼1892)은<연행가>를 만들었으며, 신재효는<괘심하다 서양 되놈>이란 단가를 만들어 각각 서양을 비판한다. 다른 한편으로 서양음악을 실학자이자 改新樂學者들을 중심으로 자주적으로 발전시킨다. 서양음악의 이론과 실제를 수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1631년부터였다.426) 제1기 기간에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신부들 중심으로<성 시메온 송가>·<떼 데움>·<알렐루야>·<아베 마리아>등의 그레고리오 성가와 평균율에 의한 성가들이 불려졌다. 또 최양업 신부가 기존 민요에 신앙가사를 얹혀 부르는 ‘천주가사’도 광범위하게 불렸다. 이 시기에 崔漢綺(1803∼1877)가 서양의 음향학을 비롯하여 음악과학적인 이론체계인 ‘音樂氣學’체계를 확립하고 자주적이면서 개방성을 가진 민족음악으로 발전시켜 서양제국에 대응했다.

426)노동은,≪한국근대음악사≫Ⅰ, 347·361쪽. 제1기 이전인 약 2백여년 전부터 정두원·김창업·홍대용·박지원·이덕무·박제가·정약용·이규경·서유구 등이 서양음악을 조선의 문화체계로 소개한다. 서유구는 서양음악을 ‘彼音’으로, 19세기의 이규경은 ‘西音’, 후에 ‘西樂’-‘洋樂’-‘音樂’으로 되었다. 이미 18세기 중반 이후 홍대용이 양금(洋琴, dulcimer)을 들여와 율관 제도의 대안악기로 통용시켰고, 19세기 전반기에 自鳴琴(musical box)이 들어와 양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