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편 한국사근대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Ⅳ. 종교6. 천주교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Ⅱ. 한민족의 기원
      •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성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개요
      • Ⅰ. 구석기문화
      • Ⅱ. 신석기문화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개요
      • Ⅰ. 청동기문화
      • Ⅱ. 철기문화
    • 04권 초기국가-고조선·부여·삼한
      • 개요
      • Ⅰ. 초기국가의 성격
      • Ⅱ. 고조선
      • Ⅲ. 부여
      • Ⅳ. 동예와 옥저
      • Ⅴ. 삼한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개요
      • Ⅰ. 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 Ⅱ. 고구려의 변천
      • Ⅲ. 수·당과의 전쟁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06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Ⅱ-백제
      • 개요
      • Ⅰ. 백제의 성립과 발전
      • Ⅱ. 백제의 변천
      • Ⅲ. 백제의 대외관계
      • Ⅳ. 백제의 정치·경제와 사회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개요
      • Ⅰ. 신라의 성립과 발전
      • Ⅱ. 신라의 융성
      • Ⅲ. 신라의 대외관계
      • Ⅳ. 신라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가야사 인식의 제문제
      • Ⅵ. 가야의 성립
      • Ⅶ. 가야의 발전과 쇠망
      • Ⅷ. 가야의 대외관계
      • Ⅸ. 가야인의 생활
    • 08권 삼국의 문화
      • 개요
      • Ⅰ. 토착신앙
      • Ⅱ. 불교와 도교
      • Ⅲ. 유학과 역사학
      • Ⅳ. 문학과 예술
      • Ⅴ. 과학기술
      • Ⅵ. 의식주 생활
      • Ⅶ. 문화의 일본 전파
    • 09권 통일신라
      • 개요
      • Ⅰ. 삼국통일
      • Ⅱ. 전제왕권의 확립
      • Ⅲ. 경제와 사회
      • Ⅳ. 대외관계
      • Ⅴ. 문화
    • 10권 발해
      • 개요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Ⅱ. 발해의 변천
      • Ⅲ. 발해의 대외관계
      • Ⅳ. 발해의 정치·경제와 사회
      • Ⅴ. 발해의 문화와 발해사 인식의 변천
    • 11권 신라의 쇠퇴와 후삼국
      • 개요
      • Ⅰ. 신라 하대의 사회변화
      • Ⅱ. 호족세력의 할거
      • Ⅲ. 후삼국의 정립
      • Ⅳ. 사상계의 변동
    • 12권 고려 왕조의 성립과 발전
      • 개요
      • Ⅰ. 고려 귀족사회의 형성
      • Ⅱ. 고려 귀족사회의 발전
    • 13권 고려 전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중앙의 정치조직
      • Ⅱ. 지방의 통치조직
      • Ⅲ. 군사조직
      • Ⅳ. 관리 등용제도
    • 14권 고려 전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전시과 체제
      • Ⅱ. 세역제도와 조운
      • Ⅲ. 수공업과 상업
    • 15권 고려 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사회구조
      • Ⅱ. 대외관계
    • 16권 고려 전기의 종교와 사상
      • 개요
      • Ⅰ. 불교
      • Ⅱ. 유학
      • Ⅲ. 도교 및 풍수지리·도참사상
    • 17권 고려 전기의 교육과 문화
      • 개요
      • Ⅰ. 교육
      • Ⅱ. 문화
    • 18권 고려 무신정권
      • 개요
      • Ⅰ. 무신정권의 성립과 변천
      • Ⅱ. 무신정권의 지배기구
      • Ⅲ. 무신정권기의 국왕과 무신
    • 19권 고려 후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정치체제와 정치세력의 변화
      • Ⅱ. 경제구조의 변화
    • 20권 고려 후기의 사회와 대외관계
      • 개요
      • Ⅰ. 신분제의 동요와 농민·천민의 봉기
      • Ⅱ. 대외관계의 전개
    • 21권 고려 후기의 사상과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변화
      • Ⅱ. 문화의 발달
    • 22권 조선 왕조의 성립과 대외관계
      • 개요
      • Ⅰ. 양반관료국가의 성립
      • Ⅱ.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
    • 23권 조선 초기의 정치구조
      • 개요
      • Ⅰ. 양반관료 국가의 특성
      • Ⅱ. 중앙 정치구조
      • Ⅲ. 지방 통치체제
      • Ⅳ. 군사조직
      • Ⅴ. 교육제도와 과거제도
    • 24권 조선 초기의 경제구조
      • 개요
      • Ⅰ. 토지제도와 농업
      • Ⅱ. 상업
      • Ⅲ. 각 부문별 수공업과 생산업
      • Ⅳ. 국가재정
      • Ⅴ. 교통·운수·통신
      • Ⅵ. 도량형제도
    • 25권 조선 초기의 사회와 신분구조
      • 개요
      • Ⅰ. 인구동향과 사회신분
      • Ⅱ. 가족제도와 의식주 생활
      • Ⅲ. 구제제도와 그 기구
    • 26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Ⅰ
      • 개요
      • Ⅰ. 학문의 발전
      • Ⅱ. 국가제사와 종교
    • 27권 조선 초기의 문화 Ⅱ
      • 개요
      • Ⅰ. 과학
      • Ⅱ. 기술
      • Ⅲ. 문학
      • Ⅳ. 예술
    • 28권 조선 중기 사림세력의 등장과 활동
      • 개요
      • Ⅰ. 양반관료제의 모순과 사회·경제의 변동
      • Ⅱ. 사림세력의 등장
      • Ⅲ. 사림세력의 활동
    • 29권 조선 중기의 외침과 그 대응
      • 개요
      • Ⅰ. 임진왜란
      • Ⅱ. 정묘·병자호란
    • 30권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 개요
      • Ⅰ.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 Ⅱ. 붕당정치의 전개와 운영구조
      • Ⅲ. 붕당정치하의 정치구조의 변동
      • Ⅳ. 자연재해·전란의 피해와 농업의 복구
      • Ⅴ. 대동법의 시행과 상공업의 변화
    • 31권 조선 중기의 사회와 문화
      • 개요
      • Ⅰ. 사족의 향촌지배체제
      • Ⅱ. 사족 중심 향촌지배체제의 재확립
      • Ⅲ. 예학의 발달과 유교적 예속의 보급
      • Ⅳ. 학문과 종교
      • Ⅴ. 문학과 예술
    • 32권 조선 후기의 정치
      • 개요
      • Ⅰ. 탕평정책과 왕정체제의 강화
      • Ⅱ. 양역변통론과 균역법의 시행
      • Ⅲ. 세도정치의 성립과 전개
      • Ⅳ. 부세제도의 문란과 삼정개혁
      • Ⅴ. 조선 후기의 대외관계
    • 33권 조선 후기의 경제
      • 개요
      • Ⅰ. 생산력의 증대와 사회분화
      • Ⅱ.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 34권 조선 후기의 사회
      • 개요
      • Ⅰ. 신분제의 이완과 신분의 변동
      • Ⅱ. 향촌사회의 변동
      • Ⅲ. 민속과 의식주
    • 35권 조선 후기의 문화
      • 개요
      • Ⅰ. 사상계의 동향과 민간신앙
      • Ⅱ. 학문과 기술의 발달
      • Ⅲ.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 36권 조선 후기 민중사회의 성장
      • 개요
      • Ⅰ. 민중세력의 성장
      • Ⅱ. 18세기의 민중운동
      • Ⅲ. 19세기의 민중운동
    • 37권 서세 동점과 문호개방
      • 개요
      • Ⅰ. 구미세력의 침투
      • Ⅱ. 개화사상의 형성과 동학의 창도
      • Ⅲ. 대원군의 내정개혁과 대외정책
      • Ⅳ. 개항과 대외관계의 변화
    • 38권 개화와 수구의 갈등
      • 개요
      • Ⅰ. 개화파의 형성과 개화사상의 발전
      • Ⅱ. 개화정책의 추진
      • Ⅲ. 위정척사운동
      • Ⅳ. 임오군란과 청국세력의 침투
      • Ⅴ. 갑신정변
    • 39권 제국주의의 침투와 동학농민전쟁
      • 개요
      • Ⅰ. 제국주의 열강의 침투
      • Ⅱ. 조선정부의 대응(1885∼1893)
      • Ⅲ. 개항 후의 사회 경제적 변동
      • Ⅳ. 동학농민전쟁의 배경
      • Ⅴ. 제1차 동학농민전쟁
      • Ⅵ. 집강소의 설치와 폐정개혁
      • Ⅶ. 제2차 동학농민전쟁
    • 40권 청일전쟁과 갑오개혁
      • 개요
      • Ⅰ. 청일전쟁
      • Ⅱ. 청일전쟁과 1894년 농민전쟁
      • Ⅲ. 갑오경장
    • 41권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 개요
      • Ⅰ. 러·일간의 각축
      • Ⅱ. 열강의 이권침탈 개시
      • Ⅲ. 독립협회의 조직과 사상
      • Ⅳ. 독립협회의 활동
      • Ⅴ. 만민공동회의 정치투쟁
    • 42권 대한제국
      • 개요
      • Ⅰ. 대한제국의 성립
      • Ⅱ. 대한제국기의 개혁
      • Ⅲ. 러일전쟁
      • Ⅳ. 일제의 국권침탈
      • Ⅴ. 대한제국의 종말
    • 43권 국권회복운동
      • 개요
      • Ⅰ. 외교활동
      • Ⅱ. 범국민적 구국운동
      • Ⅲ. 애국계몽운동
      • Ⅳ. 항일의병전쟁
    • 44권 갑오개혁 이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 개요
      • Ⅰ. 외국 자본의 침투
      • Ⅱ. 민족경제의 동태
      • Ⅲ. 사회생활의 변동
    • 45권 신문화 운동Ⅰ
      • 개요
      • Ⅰ. 근대 교육운동
      • Ⅱ. 근대적 학문의 수용과 성장
      • Ⅲ. 근대 문학과 예술
    • 46권 신문화운동 Ⅱ
      • 개요
      • Ⅰ. 근대 언론활동
      • Ⅱ. 근대 종교운동
      • Ⅲ. 근대 과학기술
    • 47권 일제의 무단통치와 3·1운동
      • 개요
      • 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반 구축
      • Ⅱ. 1910년대 민족운동의 전개
      • Ⅲ. 3·1운동
    • 48권 임시정부의 수립과 독립전쟁
      • 개요
      • Ⅰ. 문화정치와 수탈의 강화
      • Ⅱ.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 Ⅲ. 독립군의 편성과 독립전쟁
      • Ⅳ. 독립군의 재편과 통합운동
      • Ⅴ. 의열투쟁의 전개
    • 49권 민족운동의 분화와 대중운동
      • 개요
      • Ⅰ. 국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운동
      • Ⅱ. 6·10만세운동과 신간회운동
      • Ⅲ. 1920년대의 대중운동
    • 50권 전시체제와 민족운동
      • 개요
      • Ⅰ. 전시체제와 민족말살정책
      • Ⅱ. 1930년대 이후의 대중운동
      • Ⅲ. 1930년대 이후 해외 독립운동
      • Ⅳ.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체제정비와 한국광복군의 창설
    • 51권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
      • 개요
      • Ⅰ. 교육
        • 1. 일제의 교육정책
          • 1) 식민지 교육정책의 기본성격
          • 2) 제1차<조선교육령>과 식민지 교육제도
          • 3) 민족교육기관에 대한 탄압
        • 2. 민족교육의 정비
          • 1) 문화정치와 교육실태
          • 2) 민족운동의 전환과 실력양성론
          • 3) 제2차<조선교육령>과 민족교육
        • 3. 민족교육운동의 전개
          • 1) 사립학교 교육
          • 2) 민립대학설립운동
          • 3) 민중계몽 교육운동
            • (1) 민중교육기관 설립의 배경
            • (2) 민중교육기관의 성격
            • (3) 민중교육운동의 주체
        • 4. 민족교육의 수난
          • 1) 침략전쟁과 황국신민화정책
          • 2) 황민화교육과 민족교육의 수난
      • Ⅱ. 언론
        • 1. 일제의 언론정책
          • 1) 법적 규제
          • 2) 사전탄압과 사후탄압
        • 2. 무단통치기의 언론
          • 1) 총독부 기관지 독점기
          • 2) 도쿠토미의≪국민신문≫과≪매일신보≫
          • 3) 잡지의 발달
        • 3. 문화정치기의 언론
          • 1) 3·1운동 직후의 여러 독립신문
          • 2) 상해의≪독립신문≫
          • 3) 3대 민간신문의 창간
            • (1)≪조선일보≫
            • (2)≪동아일보≫
            • (3)≪시사신문≫
          • 4)≪시대일보≫와≪중외일보≫
            • (1)≪시대일보≫
            • (2)≪중외일보≫
          • 5) 일제의 언론탄압
            • (1) 행정처분
            • (2) 사법처분
        • 4. 1930년대의 언론
          • 1) 논조의 위축과 사세의 신장
          • 2) 잡지 발행 경쟁과 일본제품 광고
          • 3) 문자보급-농촌계몽운동
          • 4) 3대 민간지의 폐간
      • Ⅲ. 국학 연구
        • 1. 국어학
          • 1) 국어연구 단체의 조직과 국어연구
            • (1) 국어연구 단체
            • (2) 국어연구
          • 2) 국어운동의 전개
          • 3) 조선어학회사건
        • 2. 국문학
          • 1) 국학파의 연구
          • 2) 실증주의적 국문학 연구와 그 분화
        • 3. 국사학
          • 1) 민족주의사학
          • 2) 사회경제사학
          • 3) 실증사학
      • Ⅳ. 종교
        • 1. 일제의 종교정책
          • 1) 일제 종교정책의 기조
          • 2) 무단통치기의 종교 억압·통제정책
          • 3) 문화정치기의 종교 회유·분열정책
          • 4) 침략전쟁기의 종교 이용·탄압정책(1931∼1945)
        • 2. 천도교·대종교
          • 1) 천도교
            • (1) 천도교의 창시
            • (2) 교규의 정비와 교리의 정립
            • (3) 3·1운동의 주도와 임시정부 수립 활동
            • (4) 문화운동론의 수용과 문화운동의 전개
            • (5) 사회변혁론의 모색과 천도교의 분열
          • 2) 대종교
            • (1) 대종교의 중광과 그 배경
            • (2) 대종교의 확산과 조직의 정비
            • (3) 대종교의 독립운동
            • (4) 대종교의 수난
        • 3. 불교
          • 1) 식민지 불교의 성립
            • (1)<사찰령>체제
            • (2) 원종 및 임제종의 퇴진
            • (3) 30본산 연합제규와 불교의 중흥
          • 2) 3·1운동과 불교계의 각성
            • (1) 3·1운동 참여
            • (2) 독립운동에 동참
            • (3) 불교의 자주화와 통일기관
            • (4) 불교전통의 회복
          • 3) 불교자주화의 시련
            • (1) 불교운동의 기반 구축
            • (2) 승려대회와 종헌
          • 4) 조계종의 성립과 식민지체제에 좌절
            • (1) 총본산건설운동과 조계종
            • (2) 군국주의 체제에 좌절
        • 4. 유교
          • 1) 일제강점기의 유교문제
          • 2) 유림의 항일운동과 일제의 탄압
            • (1) 순절과 망명의 항거
            • (2) 유림의 독립청원활동
          • 3) 계몽운동과 유교개혁운동
            • (1) 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
            • (2) 유교개혁운동의 양상
          • 4)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과 분열정책
            • (1) 일제의 유림 회유정책
            • (2) 일제의 유림 분열정책
          • 5) 일제의 동화정책과 유교전통의 파괴
            • (1) 일제의 제도적 동화정책
            • (2) 일제의 문화적·풍속적 동화정책
          • 6) 일제하의 유교의 특성
        • 5. 개신교
          • 1) 식민지시기 개신교의 상황
          • 2) 개신교의 토착화를 위한 노력
          • 3) 민족문화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 활동
            • (1) 언론·출판
            • (2) 한글 연구와 보급
            • (3) 역사와 지리 연구
            • (4) 문학·음악·미술·건축
            • (5) 물산장려운동
        • 6. 천주교
          • 1) 교육활동
          • 2) 출판·언론활동
          • 3) 문학·건축·예술활동
      • Ⅴ. 과학과 예술
        • 1. 과학
          • 1) 국내 과학기술교육의 여건
          • 2) 민간 주도의 해외유학
          • 3) 과학기술자들의 활동
        • 2. 음악
          • 1) 제1기-무단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한국전통음악의 약체화
            • (3) 일본 음악교육의 강제화
            • (4) 민족음악의 전개
          • 2) 제2기-문화통치기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의 통제
            • (2) 일본음악교육의 강제화
            • (3) 민족음악의 전개
          • 3) 제3기-전시체제하의 음악
            • (1) 한국음악사회 통제와 친일파 육성
            • (2) 전시체제하 노래 및 음악교육
            • (3) 전문음악가들의 창작활동
            • (4) 민족음악의 전개
        • 3. 미술
          • 1) 전통 화단과 서양화의 이입
          • 2)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
          • 3) 서양화의 정착과 새로운 모색
          • 4) 근대적 성격의 조각
          • 5) 전시체제하에서의 미술
        • 4. 체육·무용
          • 1) 일제하 근대체육의 성장과 시련
            • (1) 일제의 식민지 체육정책과 민족체육의 대응
            • (2) 3·1운동 이후 문화통치와 민족체육의 성장
            • (3) 전시파쇼체제와 민족체육의 저항
          • 2) 일제하 근대무용의 시련과 성장
            • (1) 일제하 전통무용의 계승과 시련
            • (2) 일제하 신무용의 출현과 성장
        • 5. 연극·영화
          • 1) 1910년대-전통극과 신파극
          • 2) 3·1운동이후∼1920년대-소인극운동
          • 3) 1930년대-대중극·신극과 영화의 발전
          • 4) 1940년대-연극·영화의 암흑기
      • Ⅵ. 민속과 의식주
        • 1. 민속
          • 1) 식민지시기 민속의 변화
          • 2) 생산관련 민속
          • 3) 가족과 친족
          • 4) 촌락과 향촌사회
          • 5) 신앙과 의례
          • 6) 세시풍속, 예능 및 설화
        • 2. 의생활
          • 1) 의생활 변화의 흐름과 양상
          • 2) 흐름의 대세
            • (1) 의복개량
            • (2) 백의금지와 색의권장
            • (3) 몸뻬출현
            • (4) 국민복
          • 3) 변화의 양상
            • (1) 두식(모발과 관모)
            • (2) 의복
            • (3) 기타
        • 3. 식생활
          • 1) 식생활 환경의 변화
            • (1) 소작농과 화전민 급증
            • (2) 토막민·실업자·걸인의 급증
            • (3) 일본의 곡물 수탈
            • (4) 식품 제조업의 발달
            • (5) 서구식 영양 이론의 도입
            • (6) 일본과 외국 음식의 전파
            • (7) 식료품 배급제도
            • (8) 전통 식생활의 전승과 신여성 교육
          • 2) 식품의 종류와 유통
            • (1) 식사 횟수와 섭취량
            • (2) 주식의 곡물 식품
            • (3) 곡류 식품의 생산과 유통
            • (4) 육류 찬물과 축산 식품
            • (5) 어패류 찬물과 수산 식품
            • (6) 소채 찬물과 소채 식품
            • (7) 과실류
            • (8) 조미식품
            • (9) 기호식품
        • 4. 주생활
          • 1) 주생활 개선을 통한 주택개량운동
          • 2) 근대건축가들의 등장과 문화주택
          • 3) 도시형 한옥의 등장
          • 4) 조선주택영단의 설립과 영단주택의 건설
    • 52권 대한민국의 성립
      • 개요
      • Ⅰ. 광복과 미·소의 분할점령
      • Ⅱ. 통일국가 수립운동
      • Ⅲ. 미군정기의 사회·경제·문화
      • Ⅳ. 남북한 단독정부의 수립

2) 출판·언론활동

 천주교회의 출판·언론활동은 다른 문화활동에 비해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종교활동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일반신자교육과 전교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출판활동은 주로 이러한 문제와의 연관성 아래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출판활동 중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서의 한글번역작업을 들 수 있다. 천주교회의 성서번역작업은 1906년부터 주교 뮈텔의 주도 아래 시작되었다.421)<신약4복음서>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 작업에서 신부 孫聖載(야고보)·洪秉喆(루가)이 마태오복음을 번역하였으며, 신부 韓基根(바오로)이 나머지 복음서의 번역과 전체 각주작업을 담당하였다. 그런 다음 1909∼1910년 뮈텔과 한기근의 교열작업을 거쳐 1910년 연말에≪셩경≫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의 성서활판소에서 간행하였다.422) 이로써 이≪신약성서≫가 교회창설기 이래로 필사되거나 목판 및 활판으로 간행되어 읽혀지던 한글본≪셩경직≫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후 한기근은 1922년에≪종도행전≫(사도행전)을 번역·출간하였고, 덕원 베네딕도회의 신부 슐라이허(A. Schleicher)는≪신약성서≫의 남은 서간들과 묵시록을 번역한 뒤 최병권과 신부 로트(L. Roth, 洪泰華), 김용학의 교정과 교열을 거쳐 1941년에 출간하였다. 베네딕도회에서는 이에 앞서≪少年聖書≫(1925년)와 신부 에그너(R. Egner)의≪어린이의 성서≫(1940년)를 발간한 적이 있었고, 1941년에는 신부 차일라이스(V. Zeileis)와 신부 퀴겔겐(C. Kügelgen, 具傑根)이≪합본복음서≫를 번역하기도 하였다. 또 일제말기에는 베네딕도회에서≪구약성서≫를 번역하여 출간을 기다리다가 훗날 압수되었다고 한다.423)

 이와 함께 일반신자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교리서와 교회지도서들도 간행되었다. 우선 1910년에는 한기근이 프랑스어원본을 한글로 번역한 뒤 설명을 첨부한≪요리강령≫이 간행되어 예비신자와 아동교리서로 널리 이용되었다. 다음으로 1925년에는 신부 르 장드르(Le Gendre, 崔昌根)를 중심으로 저술된 한글본≪천주교요리≫(대문답)가 발간됨으로써 1864년이래 오랫동안 이용되어 온≪셩교요리문답≫을 대신하게 되었고, 1934년에는 교리서 편찬을 위한 전국5교구위원회에서≪천주교요리≫를 확대 편찬한≪천주교요리문답≫을 간행하여 공식 교리서로 사용하였다.424)

 교구의 사목규칙과 행정제도 등에 관한 기본지침을 수록한 교회지도서로는 먼저 1912년 6월 대구교구에서 프랑스어와 라틴어로 동시에 간행한≪대구교구지도서≫(Directorium Missionis Taikou)를 들 수 있다. 이어 서울교구에서도 1922년 9월에 부주교 드브레(Devred, 兪世俊)가 저술한 라틴어본≪서울교구지도서≫(Directorium Missionis de Seoul)를 발간하였고, 이 지도서들은 1932년 9월에 발간된≪한국천주교공용지도서≫(Directorium Commune Missionum Coreae)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신자용이 아니었으며, 신자지도층인 회장들을 위한 지도서로는 1913년 대구교구에서 간행한≪회장의 본분≫(대구교구회장지도서)과 1923년에 르 장드르가 저술하여 서울의 성서활판소에서 간행한≪회장직분≫이 있었다. 그 중에서 전자는 초대 대구교구장인 주교 드망즈(Demange, 安世華)가 교구지도서에서 회장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하여 번역·보완한 것이다.425)

 그 무렵 일반 교회서적들은 서울과 대구보다는 베네딕도회가 활동하던 원산교구에서 활발히 간행되었다. 베네딕도회에서는 덕원 이전 직후인 1927년부터 인쇄소설립에 착수하였고, 1930년부터는 서적간행을 시작하였다.426) 인쇄소 책임자는 수사 피셔(L. Fischer)였고, 교정은 수도원장인 신부 로트와 신학교의 한국인 교사가 담당하였다.427) 이로써 덕원인쇄소는 1886년 나가사키에서 서울로 이전된 성서활판소와 함께 교회출판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덕원에서의 첫 결실은 1933년에 신부 아펠만(B. Appelmann)이 교회전례에서 가장 긴요한 미사통상문에 해설을 곁들여 저술한 한글본≪미사규식≫이었다.428)

 그 이전부터 원산과 延吉敎區(1928년에 知牧區로 설정됨)의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은 신자들의 능동적인 미사참여와 전례의 土着化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토착화 운동은 ‘미사 經本과 聖務日禱의 모국어화’로 이어졌고, 연길교구의 신부 랍(K. Rapp)과 아펠만, 원산교구의 신부 로트는 이를 위해≪미사경본≫의 한글번역과 사용법교수에 노력해 왔으며, 1936년에는 마침내 로트에 의해 한글본≪미사經本≫(약 1천 쪽)이 간행되었다.429) 이≪미사경본≫의 발간으로 일반신자들도 이제는 미사 때마다 사제들이 읊는 라틴어경문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전례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덕원인쇄소에서는 1936년에 로트의 韓獨문법서인≪조선어문법≫, 1938년에는 신부 슐라이허의 교양서적인≪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가?≫와 신부 피셔(W. Fisher, 陳道光)의 한글성가인≪가톨릭성가≫를 간행하였고, 미사와 성무일도, 일반신자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서적이나 양봉·공업·건축관련 소책자들을 꾸준히 간행하였다.430)

 다음으로 교회언론 중에서 일제강점기에 가장 먼저 창간된 것은≪경향잡지≫였다. 이 잡지는 참개화를 위한 애국계몽운동과 지식전달을 목적으로 1906년에 창간된≪경향신문≫(발행인 드망즈)이 일제의 탄압으로 1910년 12월 30일(제220호)에 폐간되면서 그 부록으로 발행되던≪寶鑑≫을 확대 개편하여 1911년 1월 15일에 격주간잡지로 창간한 것이다. 이후≪경향잡지≫는 순수종교잡지를 표방하면서 신자 재교육과 계몽활동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보감≫에서 신자들을 위해 게재하던<법률문답>란만은 계속 유지하였으며, 문예작품과 독자투고 등을 통해 가톨릭문화의 보급에도 일조를 하였고, 1933년 이후에는 조선어학회의<한글마춤법통일안>에 맞추어 내용을 편찬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상의 한계성 때문에 신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데다가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45년 5월 15일(제39권 976호) 폐간되었다.431)

 1912년에는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서 한국인 성직자들을 위한 잡지로≪타벨라≫(Tabella SS. Cordis Jesu, 예수성심지)를 등사판으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잡지발간은 1914년에 중단되었다가 1919년에 복간되었으며, 1924년부터는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나자렛인쇄소에서 발행되었다. 본래 여기에는 신학교의 소식을 비롯하여 로마·세계·한국교회의 소식과 강론, 논쟁사항, 이단반박의 역사, 과학 등이 게재되었는데, 홍콩발행 후부터 소식란이 없어지면서 흥미를 끌지 못하게 되자 신학교에서 소식지만을 따로 만들어 그 부록으로 발행하다가 1937년 6월 이후에 폐간되었다.432) 한편 덕원신학교에서도 1933년부터 1939년까지 소식지≪神友≫를 발간하였다.

 이처럼 일제초기에는 일반생활과 관련된 언론활동이 미진하였다. 그러다가 민족문화운동, 민족언론기관의 설립과 민족지 창간 등에 자극을 받아 당시 가톨릭운동(Catholic Action)을 주도해 나가던 대구와 서울의 두 단체에 의해 교회신문이 발간되었다. 먼저 대구교구에서는 南方天主公敎靑年會 명의로 가톨릭운동의 계몽과 확대를 표방하고 1927년 4월 1일에≪천주교회보≫(현≪가톨릭신문≫의 전신)를 창간하였다. 이후 여기에서는 소식보도·의견교환·보조일치의 3대 목표를 기치로 내세우고 소식전달과 교리선전, 護敎 등의 내용을 게재하였으며,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증면을 거듭하였다.433) 한편 서울의 경성교구천주교청년연합회에서도 1924년 9월부터≪청년연합회보≫를 발간해 오다가 대구의≪천주교회보≫창간에 자극을 받아 1927년 7월 10일에≪별≫을 창간하였다. 이후≪별≫은 교회소식·종교도덕·일반교양을 비롯하여 사설·논설·문예·상식 등 다양한 내용을 게재함으로써 가톨릭 문화활동에 기여하였다.434)

 1933년 3월 6일, 한국의 5개 교구대표들은 서울 명동에서 개최된 연례회의에서 가톨릭운동에 대해 심의한 뒤, 전국 5교구 출판부위원회(위원장 서울의 부주교 Larribeau)를 구성하였다. 전국 가톨릭운동의 통일을 위해서는 교회안의 출판물을 통일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 결과≪천주교회보≫는 73호를 끝으로,≪별≫은 71호를 끝으로 폐간되고, 1933년 6월 10일≪가톨릭靑年≫이 창간되어 총독부로부터 제3종 우편물인가를 받았다. 이≪가톨릭청년≫은 ‘가톨릭운동을 분산에서 종합으로’라는 기치 아래 올바른 교리이해와 護敎論을 바탕으로 한 신심함양에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반사상·철학·역사·문학·의학·과학·상식 등 다양한 내용을 게재함으로써 신자계몽과 민족문화의 발전에도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중 한 예로는 李秉岐의<조선어講話>란을 들 수 있는데, 이 欄은 조선어학회의<한글마춤법통일안>전달에 부응하여 문맹퇴치운동과 민족계몽운동에 동참하고자 한 것이었다.435) 그러나≪가톨릭청년≫이 표방한 가톨릭운동의 일치를 위한 역할은 1934년 1월 평양교구에서≪가톨릭硏究講座≫(후에≪가톨릭연구≫,≪가톨릭조선≫으로 개칭됨)를 창간하고, 1936년 봄에 연길교구에서 소년·소녀들을 위한≪가톨릭소년≫을 발간하면서 상실되어 갔다. 게다가 총독부에서는≪가톨릭청년≫의 계몽·문화적인 역할에 주목하여 철저하게 내용을 검열하였고,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이 잡지는 창간된 지 3년 6개월 만인 1936년 12월호(제4권 12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436)

 여기에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당시의 출판과 언론활동을 통해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는 점이다. 먼저≪보감≫과≪경향잡지≫에서는<대한성교사기>라는 난을 통해 샤를르 달레(Ch. Dallet)의≪한국천주교회사≫(Histoire de L'Eglise de Corée, Paris, 1874)를 번역 게재함으로써 신자들이 갖고 있던 교회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별≫에서도 한국천주교회약사와 단편적인 세계교회사를 소개하였다.≪가톨릭연구≫에서는 특집호를 통해<대구교구사>,<간도선교사>등을 소개하였으며,≪가톨릭청년≫에서도<신부 金大建(안드레아)의 전기>,<초대 조선교구장인 주교 브뤼기애르(Bruguière)의 전기>,<연길교구사>등을 특집호로 게재하였다. 특히≪가톨릭청년≫에서는 1933년 9월호부터 다음해 6월호까지 예수성심신학교에서 교회사를 담당한 신부 피숑(Pichon, 宋世興)의<朝鮮가톨릭史片影>을 연재하였다. 피숑은 이 밖에도 신부 김대건의 약전과 라틴어서한, 조선순교사료 등을 모아 신학생용 교재로 사용하였고, 1938년에는 이를≪朝鮮聖敎史料≫(Pro Corea Documenta)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경성교구천주교청년연합회에서는 1931년에≪조선천주공교회약사≫를 발간하였는데, 비록 그 분량은 111쪽에 지나지 않았으나, 한국인이 저술한 최초의 통사라는 점과 한국인의 신앙과 교회 창설을 올바른 시각에서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437)

 193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교회의 언론활동은 일제의 조직적인 탄압에 의해 침체되어 갔다. 모든 신문·잡지들은 이른바<皇國臣民誓詞>를 서두에 게재해야만 하였고, 황국화정책을 옹호하는 글들을 수록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제도교회는 마침내 그 동안의 태도를 바꾸어 신사참배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 아래 신자들로 하여금 그 의식에 참여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일제당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경향잡지≫를 제외한 모든 정기간행물들을 폐간하였다. 실제로≪경향잡지≫는 이후 종교적 의미를 상실하면서까지 일제의 정책에 부응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하였으며, 마침내는 언론을 통해 진행되어 오던 천주교회의 문화운동도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421)개신교에서는 일찍이≪신약성서≫를 완역하였으며, 1911년에는≪구약성서≫를 완역한 뒤 이를≪신약성서≫와 합쳐≪셩경젼셔≫로 발간하였다.
422)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뮈텔 주교 일기-1906∼1910≫4(1998), 1910년 7월 7일.

李鎔結,<한국 천주교회의 성서 운동>(≪한국 천주교회사의 성찰≫, 2000), 391∼392쪽.
423)李鎔結, 위의 글, 392∼393쪽.
424)최석우,<韓國敎會 敎理書의 變遷史>(≪韓國敎會史의 探究≫,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360∼361쪽.
425)≪교회와 역사≫68(1981년 4월).

차기진,<대구교구지도서>·<서울교구지도서>(≪한국가톨릭대사전≫3·7, 1996·1999).
426)프로멘시우스 레너,<원산교구사>(≪교회와 역사≫59, 1980년 7월).
427)Adelhard Kaspar O.S.B., HWAN GAB(還甲), Münster Schwarzach, 1973, p.130.
428)Ibid., p.113.
429)Ibid., pp.113∼114. 이에 앞서 랍과 아펠만은 1932년 가을부터 한글본 미사경본들을 저술하여 등사판으로 배포하였고, 아펠만은 같은 해 겨울에 저술한≪소미사경본≫(1933년 9월 간행) 안에 여러 종류의 한글본경문을 수록하였다. 또 원산의 로트는 1932년에 수도자용 한글본≪미사통상문≫을, 다음 해에는 쇼트의≪미사경문≫한글역본을 등사판으로 간행하였으며, 1934년에는 한글본≪주일미사경본≫과≪성인미사경본≫을 간행하였다.
430)한국교회사연구소 편, 앞의 책(1995), 283∼286쪽.
431)≪교회와 역사≫54(1980년 2월).

차기진,<경향잡지>(≪한국가톨릭대사전≫1, 1994), 351∼352쪽.
432)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타벨라≫(1912∼1937년).

한국교회사연구소 역편,<1913년도 보고서>·<1922년도 보고서>(앞의 책, 1987), 117∼118쪽·169쪽.
433)최석우,<가톨릭 新聞과 敎會言論의 發達過程>,≪가톨릭 신문≫1(영인본, 1982).<천주교회보>는 1931년 7월 7일 교구장 드망즈(Demange, 安世華)에 의해 교구 기관지로 인가되었다.
434)안홍균,<“별”보에 대한 연구>(≪교회사연구≫6, 1988), 497∼416쪽.
435)차기진,<“가톨릭청년”과 교회 언론>(≪교회와 역사≫161, 1988), 9쪽.
436)차기진, 위의 글, 7∼8쪽.
437)李元淳,<韓國天主敎會史硏究小史>(≪韓國敎會史論叢≫,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682∼683쪽. 이밖에도 1924년에는 서울의 부주교 Devred가 저술한≪한국의 천주교≫(Le Catholicisme en Corée)가 홍콩에서 간행되었고, 파리외방전교회의 교회사가인 A. Launay가 한국순교사에 관한 저술을, 일본인들이 한국교회사에 관한 저술을 펴냈으나 모두 한국 신자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