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납동 토성
제목 | 서울 풍납동 토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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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서울 風納洞土城 |
유형 | |
시대 | 삼국 시대 |
관련국가 | 백제 |
유의어 | 하남 위례성(河南慰禮城), 한성(漢城) |
별칭•이칭 |
[정의]
서울특별시 강동구(江東區) 풍납동(風納洞)에 위치한 백제 전기의 왕성으로 추정되는 토성.
[내용]
풍납동 토성(風納洞土城)은 또 다른 백제의 왕성인 몽촌토성(夢村土城)으로부터 북쪽으로 700m 정도 떨어져 있다. 한강 남동쪽 충적 대지 위에 쌓은 평지 토성으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 모양이다. 현재 남서쪽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고, 북벽 일부와 동쪽과 남쪽의 2200m 정도만 남아 있다. 성벽 전체 길이는 3470m 정도로, 1841m인 신라 경주 월성(月城)이나, 2686m에 달하는 고구려 국내성(國內城)보다 훨씬 큰 규모이다.
풍납동 토성에서 건물 터와 제사 유구(遺構) 등 많은 유적지가 발견되어 백제 초기의 도성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또 기와와 벽돌, 토기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당시 백제 지배층의 삶과 문화가 어떠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동안 백제 전기 왕성이었던 하남 위례성(河南慰禮城) 혹은 한성(漢城)을 먼저 발굴된 몽촌 토성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지만, 풍납동 토성이 발굴되면서 풍납동 토성 역시 백제의 왕성임이 분명해졌다. 이에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백제 역시 두 개의 왕성을 쌓아 사용하는 2성 체제였다는 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풍납동 토성의 축조 시기는 성벽 안에서 출토된 토기로 볼 때 3세기 중엽 이후로 여겨진다. 하지만 토성 내부에서 선사 시대부터 삼국 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기 때문에, 풍납동 토성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축조되기 이전부터 백제의 중심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의의]
풍납동 토성은 백제 전기의 도성 유적이다. 백제의 도성 구조와 성곽 축조 방식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한성 백제 시대에 사용된 유물 자료들이 풍부하게 출토되어 백제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 관련자료
- ㆍ풍납동 토성(風納洞土城)
- ㆍ풍납토성(風納土城)
- 주제로 보는 한국사: 2) 백제 온조⋅비류 설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 논점들
-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백제의 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