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평왕
제목 | 진평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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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眞平王 |
유형 | |
시대 | 삼국 시대 |
관련국가 | 신라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579년에서 632년까지 재위한 신라 제26대 왕.
[내용]
아버지는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의 장남 동륜 태자(銅輪太子)이며, 어머니는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 갈문왕(立宗葛文王)의 딸 만호 부인(萬呼夫人) 김씨이다. 동륜 태자가 일찍 죽어서 진흥왕의 둘째 아들인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이 왕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 세력에 의해 진지왕이 제거되고 동륜 태자의 아들인 진평왕(眞平王)이 왕위에 올랐다. 부인은 마야 부인(摩耶夫人) 김씨인데, 슬하에 아들이 없어 그를 이어 큰딸인 선덕 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이 왕이 되었다.
진평왕은 체구가 매우 크고 힘이 셌으며, 의지가 굳건하고 지혜로웠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 진흥왕이 정복 사업으로 넓혀 놓은 신라를 내실 있게 다져, 후대에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진평왕(眞平王) 대에 가장 주목되는 것은 왕권 강화와 정치 제도의 정비였다. 그는 자신과 부인, 그리고 동생들의 이름을 석가모니(釋迦牟尼)의 부모와 삼촌 이름에서 따와 붙였다. 자신의 직계 가족을 부처의 집안과 동일시하는 관념을 만들어 ‘왕이 곧 부처’라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을 강화하였고, 더불어 다른 왕족과 자신의 직계 가족을 차별화하였다. 이는 왕권 강화와 바로 연결되었다. 이전까지는 왕의 직계에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방계에서도 얼마든지 왕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진평왕의 경우 아들이 없었지만, 다른 방계로 왕위가 넘어가지 않고 딸인 선덕 여왕이 왕위를 이었다. 이는 왕의 직계 가족만이 왕위를 이을 수 있는 특별한 가계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진평왕은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제도를 정비하였다. 위화부(位和府), 조부(調府), 승부(乘府), 예부(禮部), 영객부(領客府) 등의 행정 관서를 설치하였으며, 관서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관직도 추가하였다. 또 왕실과 궁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내성(內省) 조직이 갖추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진평왕 대 왕권이 강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 관련자료
- ㆍ진평왕(眞平王)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진평왕의 관제 정비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심화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