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활인서
제목 | 동서활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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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東西活人署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동서활인원(東西活人院),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활인서(活人署), 활서(活署) |
별칭•이칭 |
[정의]
도성 내 병든 빈민들의 치료를 맡아보던 기관.
[내용]
고려 시대 빈민 구제를 맡아보던 동서대비원을 제도적으로 계승한 관서였다. 태종(太宗, 재위 1400~1418) 대 명칭을 동서활인원으로 개칭하였다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에 활인서로 다시 바꾸었다. 동활인서는 동소문 밖에 위치하였고, 서활인서는 서소문 밖에 있었다.
주된 임무는 도성 내에 빈민으로 치료받을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여 치료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의탁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돌보거나 연고가 없는 사망자들을 매장하는 일 등을 아울러 맡아보았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서활인서에는 각각 제조 1명과 별제 4명, 참봉 2명씩이 배치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별제가 2명으로 축소되었다.
▶ 관련자료
- ㆍ동⋅서활인서(東西活人署)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사회 정책과 사회 제도
- ㆍ활인서(活人署)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굶주린 사람을 구휼하는 법
- 주제로 보는 한국사: 1) 공식적인 천민, 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