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작
제목 | 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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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結作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결전(結錢), 결포(結布) |
별칭•이칭 |
[정의]
균역법(均役法)의 시행으로 부족해진 세액을 보충하기 위해 토지에 부과한 세금.
[내용]
결작은 1750년(영조 26)에 실시된 균역법으로 부족해진 세액을 보충하기 위해 토지에 부과한 세금을 말한다. 균역법의 시행으로 감소된 군포(軍布)를 보충하려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장 확실한 부과 대상은 토지와 호(戶)였다. 그러나 토지와 호에 대한 논의는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었다. 양반들의 이권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어염(魚鹽), 은결(隱結), 진전(陳田)에 세금을 부과하였지만 부족분을 다 채울 수 없었다. 따라서 중앙에서는 각 도나 감영, 병영 및 각 읍에서 재량으로 재원을 마련하여 지방군, 특히 수군(水軍)의 수요에 사용하라는 조항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조항은 다른 조항과 달리 어느 부분의 재정 수입으로 수요를 해결하라는 것인지 명백한 규정도 없었다. 이를 분정(分定)이라고 했는데 부족한 재원을 수령들에게 떠맡긴 것에 불과했다. 결국 분정은 폐지되었고 토지를 기준으로 세액을 거두는 결작세가 시행되었다. 대신 지급할 재원이 확보되지 못하면서 토지에 포(布)를 부과하는 결포론(結布論)을 수용하게 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포에만 한정되지 않고 쌀이나 동전으로도 거두었다. 동전이 널리 유통되고 있었고, 쌀은 식량이 부족할 경우 시급하게 필요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전으로 결전(結錢)을 부과할 경우 5전(錢)으로 환산하였다.
결작을 부과하면서 이전에 세금이 면제되었던 궁방전(宮房田)이나 둔전(屯田)에도 수세하였는데 이는 민간의 부담이 경감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결작으로 매년 30만 냥 정도가 거두어져 균역법 시행으로 부족해진 부분의 절반 이상을 충당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