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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휼청

제목 진휼청
한자명 賑恤廳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구황청(救荒廳), 진청(賑廳)
별칭•이칭

[정의]

조선 시대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눠 주며 구제하는 일을 담당한 관서.

[내용]

농민의 안정과 재생산 구조의 유지는 왕조의 존속과도 관련이 깊기 때문에 흉년에 농민들을 유망(流亡)하지 않게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로 받아들여졌다. 흉년이 들 경우 곡식 가격이 오르고 굶주린 백성이 생겨나게 마련인데 조선 시대 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평청(常平廳)과 진휼청을 설립했다. 본래 궁핍한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한 관서는 고려 시대에 의창(義倉)이 있었고 조선 초기에도 의창에서 기민 구제를 담당했다. 이후 6조(六曹)로 업무가 분속되면서 의창은 호조에 속한 판적사(版籍司)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조선 시대에 진휼청은 1511년(중종 6)과 1516년(중종 11)에 설치된 기록이 있다. 1524년(중종 19) 심한 재해가 들자 호조판서가 진휼 업무를 관할하고, 그 다음 해에 진휼청을 다시 설치하여 국가적으로 기민 구제 업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임란 당시 상평청과 진휼청으로 분리되었고 대동법이 실시되면서 대동법을 관장하던 선혜청(宣惠廳)에 이속되기도 했다. 이후 지속적인 재해가 나타나면서 진휼청은 상설화되었고 다시 비변사에 소속되기도 했다. 이후 진휼청은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폐지되기까지 존속하였다.

진휼청은 조선 시대 내내 기민 구제를 목적으로 유지되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백성들을 보호하고 재생산 기반을 확보해 주는 역할을 하여 조선 왕조가 유지될 수 있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 관련자료

ㆍ구황청(救荒廳)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