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당전서
제목 | 여유당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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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與猶堂全書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조선 후기 실학자인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시문집.
[내용]
‘여유당(與猶堂)’은 정약용의 당호(堂號)이며, 『여유당전서』는 정약용의 저작을 총망라하여 154권 74책의 방대한 분량으로 정리한 문집이다. 『여유당전서』는 정약용 사후 1세기가량이 지난 1934년부터 1938년까지 외현손인 김성진이 집안에 내려오는 정약용의 유고를 편집하고 정인보, 안재홍이 교정에 참여하여 당시 경성의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연활자(鉛活字)로 처음 간행되었다. 그리고 이때 간행된 『여유당전서』를 저본으로 하여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1962년 문헌편찬위원회에서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 1970년 경인문화사에서 『여유당전서보유(與猶堂全書補遺)』가 간행되었다. 최근인 2012년에는 새로 발굴된 자료들을 추가하고 일부 잘못 수록된 자료들은 제외한 『정본(定本) 여유당전서』도 출간되었다.
정약용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경제⋅사회⋅철학⋅과학⋅의학⋅역사⋅지리 등 다방면에 걸쳐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1789년(정조 13) 28세에 관리가 되어 정조(正祖, 재위 1776~1800)의 특별한 신임을 얻으며 관직 생활을 했던 정약용은 1800년(정조 24) 정조의 죽음 이후에 이루어진 신유박해로 인해 전라남도 강진에서 긴 유배 생활을 했다. 정약용의 저술 대부분은 18년 간의 긴 유배 생활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유당전서』는 크게 시문집(詩文集)⋅경집⋅(經集)⋅예집(禮集)⋅악집(樂集)⋅정법집(政法集)⋅지리집(地理集) ⋅의학집(醫學集)의 7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2집 경집에는 중용강의(中庸講義), 맹자요의(孟子要義),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 등 기존의 성리학을 넘어선 독창적인 유교 경전 해석을 실은 저술들이 담겨 있으며, 5집 정법집에서는 국가 제도와 행정, 관료의 책무에 관한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牧民心書)⋅흠흠신서(欽欽新書)⋅경세유표(經世遺表)를 살펴볼 수 있다. 7집 의학집에는 마과회통(麻科會通)이라는 마진(痲疹) 치료서가 수록되었다. 이 밖에 다양한 분야에서 정약용의 사회 개혁 사상과 독창적인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여유당전서』는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문집으로 조선 후기 실학과 실학자 정약용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 관련자료
- ㆍ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 사료로 보는 한국사 국문: 환곡제의 폐단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정약용의 풍수설 비판
- 사료로 보는 한국사 국문: 양근을 잘라 버린 서러움-애절양
- 한국의 역사: 라. 실학자들이 사회 개혁을 주장하다(D. The Silhak Scholars Call for Social Reforms)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농업 중심의 개혁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