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가사
제목 | 규방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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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閨房歌辭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내방가사(内房歌辭), 영남대가내방가사(嶺南大家內房歌辭), 규중가도(閨中歌道), 규중가사(閨中歌辭), 규합가사(閨閤歌辭), 규방문학(閨房文學) |
별칭•이칭 |
[정의]
양반가의 부녀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가사(歌辭).
[내용]
가사란 4⋅4조 율문 형식의 문학 장르인데, 주요 작가는 대체로 양반 계층이었다. 규방가사는 규방(閨房)에 기거하는 부녀자들이 향유한 가사 문학이다.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대 무렵부터 유행한 것으로 보이는 규방가사는 영남 지방의 양반가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과 전파가 이루어졌다.
규방가사는 제목을 ‘가’ 또는 ‘두루마리’라고 하며, 국문으로 창작되었다. 내용에 따라 크게 계녀가(誡女歌), 화전가(花煎歌), 자탄가(自歎歌)로 분류할 수 있다. 계녀가는 주로 친정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시집살이의 규범을 가르치기 위해 지어주는 작품 군이며, 화전가는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같은 여자들끼리 놀이를 벌이며 즐기는 흥취를 노래한 작품군이다. 자탄가는 남성에 비해 폐쇄적이며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하는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한껏 표현함으로써 응어리진 한을 풀고자 한 ‘분풀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중 계녀가가 가장 이른 시기부터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규방가사는 사족 가문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일상과 그런 일상에 대한 그들의 의식과 정서를 다양하게 보여 준다. 18세기 영남 지방에서 유교 문화적 교양을 지닌 양반 부녀자들에 의해 유행하였던 규방가사는 19세기를 거쳐 일제 시대에는 일제에 대한 저항 의식을 담는 등 내용상의 변화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창작되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점차 쇠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