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공 정책
제목 | 통공 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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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通共政策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조선 시대 시전(市廛) 상인의 독점적 물품 판매권인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혁파하는 정책.
[내용]
조선 정부는 시전을 두어 왕실이나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는 대신, 시전 상인에게 정부가 허가하지 않은 난전(亂廛)을 금지할 수 있는 독점판매권인 금난전권을 주었다. 금난전권을 가진 시전 상인들은 노론 벌열 가문과 연결되어 그들의 경제적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권한을 강화시켜 나갔다. 시전의 독점 판매는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따른 폐단도 급증하였다. 물가가 오르고, 시민이 실업하여 도시민들의 생활 압박이 가중되었다.
정부에서는 독과점에 따른 폐단을 해결하기 위해 통공 정책을 점차 확대 실시하였다. 통공 정책으로 정부는 시전에 의해 금지된 물품을 난전 상인에게 매매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1741년(영조 17)에 처음 실시한 신유통공(辛酉通共)은 소규모의 난전 상인, 곧 소상공인의 상업 활동을 보호하여 도시민의 생활필수품이 원활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한편, 양반⋅궁방⋅군문 등이 자행하는 대규모 난전을 금지하여 시전 체계도 유지될 수 있도록 하였다. 신유통공 이후부터 시전 상인과 난전 상인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는 어느 한쪽을 특별히 지원하지 않고 도시민 전체의 입장에서 상업 정책을 추진했다. 곧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 보호보다는 도시민의 물가 안정에 더 역점을 두려는 입장이었다.
정조(正祖, 재위 1776~1800) 대 실시된 통공 정책에서도 소민(小民) 보호라는 이념은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신해년인 1791년(정조 15)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이 주도하여 입전(立廛)⋅면포전(綿布廛)⋅면주전(綿紬廛)⋅포전(布廛)⋅저전(紵廛)⋅지전(紙廛) 등 육의전(六矣廛)을 제외한 모든 시전 물품에 대한 통공 발매를 허락하였다. 이를 신해통공(辛亥通共)이라 한다. 신해통공은 시전 상인들의 독점적 생산과 판매 제도를 철폐함으로써 물가를 안정시키고 도시 소민을 보호하고자 한 조치였다.
그러나 조선 정부의 소민 보호라는 성과는 달성되지 못했으며, 비시전 상인이 물종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되면서 자본력을 지닌 사상(私商)에 의한 독점이 확대되었다. 19세기 이후 독점을 지향하는 사적 상업, 즉 사상 도고(私商都賈)는 더욱 활성화되어 시전 상인을 제치고 대외 무역과 국내 상업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 관련자료
- ㆍ통공 정책(通共政策)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영조의 탕평론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상공업 진흥책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영조와 정조의 탕평 정치
- ㆍ신해 통공
- 한국사 연대기: 신해 통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