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양
제목 | 건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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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建陽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조선, 일본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896년(고종 33) 1월부터 1897년 8월까지 사용된 조선의 연호.
[내용]
을미사변 이후 국내외의 비난에 직면한 일본과 갑오정권은 국면 전환을 위해 칭제건원(稱帝建元)과 태양력의 사용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각국의 공사들은 을미사변에 다수의 일본인이 개입되어 있는데, 이를 조사하지 않고 황제 칭호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일본과 갑오정권은 계획했던 황제 존호 봉위식(皇帝尊號奉位式)의 거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태양력 사용에 대한 논의는 계속 진행되어 마침내 1895년 9월 9일(음력) 정부는 태양력 사용을 의결하였다.
태양력 사용을 앞두고 갑오정권은 11월 14일(음력)에 박선(朴銑), 이주회(李周會), 윤석우(尹錫禹) 등 을미사변 관련자에 대한 재판을 마무리하였으며, 15일에는 임최수(林最洙) 등 춘생문 사건 관련자에 대한 재판도 마무리하였다. 이렇게 정치 사건에 대한 재판을 조기에 종결시킨 것은 새로운 역법(曆法)을 실시하기 전에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갑오정권은 위와 같이 재판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연호의 사용을 결의하고, 1896년부터 ‘일세일원(一世一元)’의 원칙에 따라 연호를 건양(建陽)으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1895년 11월 17일(음력)이 1896년 1월 1일(양력)로 바뀌고, 태양력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었다. 이렇게 칭제건원 가운데 칭제는 유보되었고, 건원만 시행되었다. 한편, 태양력의 시행은 조선 사회의 시간을 국제적 기준과 일치시켜서 서구의 근대적 시간을 완전히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 ㆍ건양(建陽)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단발령
- 주제로 보는 한국사: 가.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
-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을미사변과 단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