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구락부
제목 | 정동구락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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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貞洞俱樂部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조선~대한제국, 미국, 러시아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895년경 서울 정동(貞洞)에서 개화파 정치인들과 서구 외교관들이 사교와 친목 도모를 내세우며 만든 모임.
[내용]
당시 정동에는 미국, 영국, 러시아 등 각국 공사관들을 비롯해 서양인들이 운영하던 음식점, 호텔과 선교사들의 주택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점차 사교와 외교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동에 주재하던 외국인들은 1892년(고종 29) 6월 2일 서울 주재 외교관과 영사단(領事團) 클럽, 일명 서울 클럽(Seoul Club)을 결성했다. 서울 클럽은 당시 손탁(Antoinette Sontag, 孫澤, 1854~1925)이 운영하는 손탁 호텔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
조선 정치인들 역시 정동을 드나들며 각국 외교관들과 친분을 쌓는 한편 정치, 외교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이들 가운데 특히 미국, 러시아와 가까웠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정동파(貞洞波)라는 하나의 정치 세력이 형성되었다. 정동파 인물들은 1894년 이전 고종(高宗, 재위 1863~1907)의 반청 자주 외교 정책에 부응하여 외교관이나 유학생으로 외국에서 체류했던 경력을 갖고 있었다. 즉 1888년 초대 주미 전권 공사와 수행원이었던 박정양, 이완용, 이채연, 이하영 등과 갑신정변에 연루되어 망명 또는 유학했던 서광범, 윤치호 등의 인사들이 정동파를 형성했다. 이들은 갑오개혁 당시 정동의 각국 외교관 및 선교사들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1895년(고종 32) 삼국 간섭으로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친러파 내지 민씨 척족이었던 이윤용, 이범진, 민영환, 민상호 등이 친미파와 협력하여 일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정동파에 가담했다. 이들 조선 정치인들과 서울 클럽의 씰(John M. B. Sill), 베베르(Karl Ivanovich Wäber, 1841~1910)를 비롯한 외교관들 및 선교사들은 함께 반일(反日)과 친미, 친러를 내세우며 사교 모임을 넘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들이 주로 모임을 가졌던 손탁 호텔이 정동에 소재하고 있어 정동파로 불렸다.
정동파를 구성했던 친미, 친러파 정치 세력들은 반일을 위해 일시적으로 연합하였으나 아관파천 이후 각기 자신들의 정치 지향과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하고 대립하였다.
▶ 관련자료
- ㆍ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독립 협회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