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 재판소
제목 | 한성 재판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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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漢城裁判所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조선~대한제국 |
유의어 | 한성부 재판소(漢城府裁判所) |
별칭•이칭 |
[정의]
1895년부터 1907년까지 한성부의 민⋅형사 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기구.
[내용]
근대적 사법 제도 개혁 정책의 하나로 1895년 3월 25일 「재판소 구성법」이 반포되었다. 이 법률은 지방 재판소, 개항장 재판소, 한성 재판소, 순회 재판소, 고등 재판소, 특별 법원 등 모두 5가지 재판소의 설치를 규정하였다.
이 법에 의해 한성 재판소는 현재 종로 2가 사거리 제일은행 본점 터에 설립되었다. 기존 행정 관청인 한성부가 관할하던 모든 민⋅형사 소송 및 외국인과 조선 민간인 사이의 민⋅형사 사건 재판을 담당하였다. 또한 1896년 8월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경기도 3부(광주⋅강화⋅인천)와 34군에서 발생한 사건 재판까지 맡아 업무가 폭증하였다. 이에 따라 1897년 9월 경기 재판소를 따로 설치하고, 한성 재판소의 관할을 한성부 5서(署) 내의 민⋅형사 사건으로 한정하였다.
한성 재판소는 수반판사 1인, 판사 2인(민사⋅형사 각 1), 부판사 1인, 서기 8인, 정리 8인으로 구성되었다. 모든 형사 사건은 부판사가 미리 심리하여, 벌금 5원 이하⋅태형(笞) 20대 이하⋅감금 30일 이하의 사건일 경우 스스로 확정 판결을 내리며, 중징계해야 할 사건은 형사 담당 판사에게 넘기는 구조였다.
하지만 한성 재판소의 업무를 종래와 같이 한성 판윤에게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면서, 1898년 2월 한성 재판소를 폐지하고 한성부 재판소를 설립하였다. 한성부 재판소는 한성부 건물 내로 옮겨졌고, 관할은 이전과 동일하되 인적 구성에서 수반판사 1인을 한성부 판윤이 겸하고, 판사 2인 중 1인을 한성부 소윤이 겸하였다. 1898년부터 1905년까지 여섯 차례 규정이 개정되었다. 재판소 명칭도 한성부 재판소와 한성 재판소를 번갈아 사용하였고, 판사의 겸임제와 전임제도 반복되었다. 1907년 12월 23일 통감부는 한국의 사법 제도를 장악하기 위한 새로운 「재판소 구성법」 등을 제정하고 이에 의해 한성 재판소를 경성 지방 재판소(京城地方裁判所)로 재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