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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민

제목 멕시코 이민
한자명 Mexico移民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멕시코, 일본
유의어 애니깽(Anniquin), 에네껜(henequén)
별칭•이칭

[정의]

1905년 1,000여 명의 한국인들이 멕시코로 이주한 계약 노동 이민.

[내용]

멕시코 이민은 1905년 단 한차례만 진행된 불법적인 단기 계약 노동 이민이었다. 북아메리카로의 이민은 1902년 12월 제물포항을 출발한 미국 하와이로의 노동 이민이 그 시초였다. 하와이 이민이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멕시코 이민은 마이어스(John G. Meyers)라는 이민브로커가 진행한 것이었다.

마이어스는 멕시코 유카탄 에네껜 농장주협회 대리인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처음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려고 했지만 멕시코 이민의 평판이 나빴기 때문에 실패하였다. 그 와중에 일본의 이민 회사인 대륙 식민 회사와 결탁하여 한국에서 노동 이민자를 모집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1904년 8월 한국에 들어온 마이어스는 전국의 주요 항구 도시에 이민모집사무소를 개설하였으며 〈황성신문〉에 대대적인 이민 모집 광고를 냈다. 노동 이민자 모집은 순조로웠는데 〈황성신문〉에 실린 허위 과장 광고와 하와이 이민의 성공 소식 등이 멕시코 이민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905년은 러일 전쟁으로 사회 분위기가 좋지 못했고, 가뭄 등으로 한국인의 경제적 궁핍이 심했던 시기였다.

모집된 인원은 약 1,000여 명으로 가족 중심의 이민자들이었다. 계약 기간은 1905년부터 1909년까지 4년이었다. 한인 이민자들의 최종 목적지는 유카탄 주의 주도 메리다(Mérida)였으며, 1905년 제물포항을 떠나 5월경 멕시코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한인 이민자들은 20여 개의 에네껜 농장으로 분산 배치되었다. 모집 당시의 광고와 다르게 한인 이민자들은 살인적인 무더위와 노예 수준의 노동 조건 아래서 혹사당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멕시코와 어떠한 외교적 관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여서 멕시코 이민자들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였다. 이들은 계약 기간 동안 각 농장에 고립되었으며, 1909년 계약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자립하거나 한국으로 돌아가기 어려웠다.

한인 이주민들은 1909년 계약 종료 이후 유카탄 주의 주도 메리다에서 한인회를 조직하였다. 메리다의 한인회는 유카탄 지방의 한인 모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국민회의 메리다 지부로서의 역할도 담당하였다. 한인회는 강제 병합 이후 독립 자금을 지원하고, 군사 훈련을 가르치는 숭무 학교(崇武學校)를 세우는 등 독립운동도 활발하게 벌였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한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고, 1921년 메리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쿠바로 이주하면서 메리다 한인회의 활동도 쇠퇴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