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회
제목 | 성진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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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醒進會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926년 결성된 광주(光州]) 지역 중등 학교 최초의 비밀 학생 모임으로 1929년 광주 학생 운동 발발의 배경이 된 학생 조직.
[내용]
성진회는 광주 고보와 광주 농업 학교 학생들을 주축으로 1926년 9월부터 조직 논의가 진행되어 11월 3일 결성되었다. 성진회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연구 모임으로 총무는 왕재일(王在一), 회계는 장재성(張載性), 서기는 박인생(朴仁生)이 맡았다. 매주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모임을 가졌다. 비밀 연합 모임이었던 성진회는 조직의 비밀이 누설될 것을 염려하여 해산하였는데, 회원 중에 광주경찰서 형사와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이 있어서 해산하였다고 한다. 해산 시점은 1927년 2월이라는 견해와 3월이라는 견해가 있다.
비록 비밀 연합 모임이었던 성진회는 해산하였지만, 성진회에서 활동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각 학교별로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각 학교 별로 조직된 독서회는 1929년 6월 성진회 회원이었던 장재성의 주도로 다시 비밀 조직인 독서회 중앙부로 통합되었다. 독서회 중앙부의 책임비서를 맡은 장재성은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공부하면서 방학마다 귀국하여 후배 학생들의 사회과학 공부에 도움을 주었다.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장재성은 1929년 6월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하여 광주 지역 학생 사회과학 연구 모임의 조직화에 적극 나섰다. 광주 고보, 광주 농업 학교, 광주 사범 학교의 사회과학 연구 모임을 주도하던 학생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서회 중앙부는 비밀 누설의 우려로 다시 1929년 9~10월경 해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광주 학생 운동의 전국적 확산의 기폭제가 된 1929년 11월 12일의 광주 학생 시위는 독서회 중앙부 회원들이 주도하였다. 이렇게 성진회부터 시작되어 각 학교별 독서회를 거쳐서 독서회 중앙부로 이어지는 광주 지역 학생 운동의 조직 경험은 광주 학생 운동에서 광주 지역 학생들의 연합 시위운동을 가능하게 했던 주요한 원동력 중 하나였다.
▶ 관련자료
- ㆍ성진회(醒進會)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격문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광주 학생 항일 운동 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