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
제목 |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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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중국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1924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인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들이 모여서 조직한 단체.
[내용]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1924년 4월 말 베이징에서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이을규, 이정규, 백정기, 정화암 등이 모여서 결성되었다. 당시 의열 활동을 둘러싸고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3⋅1 운동 이후 국내의 대중 운동이 성장하자 사회주의자들은 의열 활동을 비판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대해 아나키스트들은 조직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을 느꼈다. 마침 이회영의 집에 모여 있던 이을규, 이정규 형제와 일본에서 온 백정기가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조직화 방안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이 결성되었다.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기관지 〈정의공보(正義公報)〉를 발행하며 자신들의 주의⋅주장을 선전하였다. 〈정의공보〉는 주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배척하고 민중의 폭력적 혁명을 주장하였다. 또한 자유 연합의 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민족 해방 운동 단체들의 결집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민족 해방 운동 단체들의 결집을 주장하였지만,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볼셰비키 혁명론과 흥사단의 무실역행론은 둘 다 비판하며 모두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은 자금난과 생활난으로 지속적인 활동이 어려웠다. 1924년 8월 이회영은 개인 생활의 어려움으로 운동의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각자 분산하여 활동하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따라 회원들은 각지로 떠났다. 이을규, 이정규, 백정기 등은 상하이로 떠났고, 이회영은 베이징에 남아 국내와의 연락을 담당하였다.
이후 이들은 1928년 6월 14일 중국인, 일본인 등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과 연대하여 일본 제국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에 참여하였다. 이정규는 서기부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회영은 조직 결성을 위해 소집된 동방 아나키스트 대회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 운동」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의 무정부주의 운동은 곧 진정한 독립운동이오, 한국에서의 진정한 해방 운동, 즉 무정부주의 운동은 곧 독립운동”이라는 입장을 피력하였다. 동방 무정부주의 연맹은 기관지 〈동방(東方)〉을 발행하였으며, 1930년 무렵까지 의열 활동을 통한 민중 봉기를 유도하고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 관련자료
- ㆍ재중국 조선 무정부주의자 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무정부주의 운동-허무당 선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