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동조론
제목 | 일선 동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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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日鮮同祖論 |
유형 | |
시대 | 근대 |
관련국가 | |
유의어 | 일선 동근론(日鮮同根論), 일선 동원론(日鮮同源論) |
별칭•이칭 |
[정의]
일제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합리화하고 한국인의 저항을 무마시키려는 의도로 주장된 식민 사관의 일종.
[내용]
일선 동조론은 말 그대로 일본인과 조선인은 동일한 조상에서 나온 피로 맺어진 가까운 혈족이며, 언어와 풍속, 신앙 등 문화도 본래 같았다고 강조하는 이론이다. 일선 동조론은 멀리는 에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처음 학술적으로 제기된 것은 도쿄제국대학 교수 시게노 야스쯔구(重野安繹),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 등이 『국사안(國史眼)』(1890)을 간행한 이후부터였다. 이 책에서는 일본 일왕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의 동생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가 그의 아들과 조선에 갔으며, 조선의 금은을 취하기 위해 배를 만들었고, 신라와도 교류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는 신화적인 내용이 많은 『일본서기』의 기사를 역사적 사실로서 그대로 서술한 것이었다. 이 내용은 일본의 초중등 교과서에 채용되어 일선 동조론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 대체로 1910년 강제 병합 이전의 일선 동조론은 일본과 조선이 국가 또는 통치 영역을 같이 했다는 주장이었다. 이는 일한 동역론(日韓同域論)으로서 대외 침략을 추구하던 일본인의 입장에서 주장된 것이다.
일선 동조론은 일제의 강제 병합 전후로 일본인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고, 병합 이후에는 친일 조선인들 사이에도 통용되었다.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는 1929년 『일선 동조론』을 출간해 일선 동조론을 학문적으로 확산시켰다. 가나자와는 이 책에서 1902년 자신의 도쿄제국대학 박사 학위 논문에서 주장한 일본어와 한국어가 같은 계통이라는 학설을 확장시켰고, 스사노오가 신라국에 강림했으며, 한국인의 일본 귀화가 많았다는 사실 등을 열거했다.
이러한 이론은 민간사학자들과 대중들에게도 유통되면서 여러 형태의 변종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스사노오가 단군이라는 궤변이 확산되어 조선의 신사에 스사노오를 합사해야 한다거나 스사노오의 신사를 설립하려는 운동도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학계의 소수설로서, 단군의 실체를 부인했던 총독부의 정책으로는 반영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 외에도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일본과 조선의 관련성이 부각되었다. 인류학적으로는 조선과 일본의 인종적 공통성이, 언어상으로는 일본어와 조선어의 유사성이 강조되었다. 역사적으로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삼한 정벌과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 설치 등을 실제 사실로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주장과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근친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인종적으로는 한국인의 후진성, 언어적으로는 일본어의 우수성을 드러내고, 역사적으로는 고대부터 한국이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는 한국사의 정체성, 타율성을 강조하는 시각이 깔려있는 것이었다. 곧 일선 동조론은 일제의 한국 침략과 통치를 정당화하는 식민 사관의 역사상을 구축하는 주요한 논거였다.
▶ 관련자료
- ㆍ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이광수와 윤치호의 내선 일체 옹호
- ㆍ일⋅선 동조론(日鮮同祖論)
- 7차 교육과정 중학교 국사: 민족 말살 정책
- ㆍ일선 동조론(日鮮同祖論)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