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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제 사학

제목 사회 경제 사학
한자명 社會經濟史學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마르크스주의 사학(Marx主義史學)
별칭•이칭

[정의]

1930년대 이후 일제 식민 사학에 대항하여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의 사적 유물론을 주된 방법론으로 하여 한국사를 체계화한 역사학.

[내용]

1920년대 들어 사회주의 사상과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식민지 조선에도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으로서 사적 유물론도 지식인들에게 보급되었다. 사적 유물론은 물질재화를 생산해내는 생산 양식의 발전에 따라 사회와 역사가 변동된다고 파악하고, 인류 역사가 원시공산제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의 단계를 거쳐 발전해간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회 경제 사학에 입각한 연구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학자는 백남운(白南雲)이었다. 그는 『조선사회경제사』(1933),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상』(1937)을 통해 조선의 역사 발전 과정을 원시 씨족공산체 사회, 노예 경제 사회(삼국시대), 아시아적 봉건 사회(삼국시대 말기~고려), 자본주의 맹아(조선), 외래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로 정리하려 했다. 이를 통해 한국사도 세계사와 같이 보편적 발전 경로를 거쳐왔음을 증명하려 했다. 그의 연구는 식민 사학에서 조선의 역사가 정체되었고(정체성론), 스스로 주체적인 역량으로 역사를 전개시키지 못하고 주변 외세의 힘에 의해서만 좌우되었다는(타율성론) 관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다. 비록 그는 두 책 외의 연구서를 더 이상 출간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연구는 한국 역사 연구를 한 단계 높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이청원(李淸源)은 『조선사회사독본』(1936), 『조선역사독본』(1937)을 저술하여 한국사의 발전단계를 원시공산제 사회, 아시아적 노예제 사회, 아시아적 봉건제 사회, 이식자본주의 사회로 정리했다. 그 역시 사적 유물론을 적용하여 식민 사관의 조선사 왜곡을 비판했는데, 동시에 민족주의 사학의 관념성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이 밖에 이북만(李北滿)과 김광진(金光鎭), 전석담(全錫淡) 등은 한국사에서 노예제 사회 결여론을 주장했다. 곧 이들은 원시 사회에서의 강한 공동체적 요소가 노예제로 이행하지 않고, 공동체 내부의 농노화를 통해 봉건제가 성립된 것으로 보았다.

사회 경제 사학은 사적 유물론과 근대 경제학 이론 등의 연구 방법론을 통해 한국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또 식민 사관이 주장하는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명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사적 유물론을 너무 공식적으로 한국사에 대입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그로 인해 구체적인 실증에도 문제를 보였다. 해방 이후 사회 경제 사학자들은 백남운을 중심으로 조선학술원(1945)과 민족문화연구소(1946) 창립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냉전 논리가 강화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대부분 월북하여 북한 역사학계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 관련자료

ㆍ마르크스주의 역사관
ㆍ마르크스주의 유물 사관(唯物史觀)
ㆍ사회 경제 사학(社會經濟史學)
ㆍ유물 사관(唯物史觀)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