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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제목 열녀
한자명 烈女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열부(烈婦), 절부(節婦)
별칭•이칭

[정의]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거나 오랜 세월 재가(再嫁)하지 않고 수절한 부녀자.

[내용]

조선 건국 이전 우리나라는 여성에 대한 제약이 많지 않았고 성과 관련된 풍속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남녀가 연애를 하거나, 남편이 사망한 이후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재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는 유교적 풍습이 강화됨에 따라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강조되었고, 혹 남편이 사망하는 경우에도 다른 남성과 재혼하는 것은 사회적 금기로 여겨졌다. 이뿐만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정조를 잃는 것 역시 여성으로서 덕을 잃은 행위로 여겨졌다.

조선은 유교 질서를 강화하기 위하여 충(忠), 효(孝), 열(烈)의 삼강(三綱)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같은 교화서(敎化書)를 여러 차례 간행⋅배포하였다. 또한 이를 실천한 사람들에게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라는 칭호를 붙이고 여러 가지 혜택을 베풀었다. 즉, 남편과 사별한 이후 평생 수절하며 살아가는 여성이나 환란의 와중에서도 정조를 잃지 않기 위해 목숨을 내버린 여성들, 위독한 남편에게 피와 살 등 자기 신체의 일부를 주어 그 목숨을 구한 여성들을 ‘열녀’라 칭하였다. 아울러 해당 여성의 집안에 정문(旌門)이란 문을 세워 주고 그 집의 세금을 면제해 주었으며, 경우에 따라 집안의 젊은 남성에게는 벼슬을 내려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유교적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었으나 각종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남편이 사망한 뒤 삼년상의 이행과 수절에 그치지 않고 따라서 죽는 등 극단적인 경우가 생겨났다. 또 열녀에 대한 포상을 노리고 집안에서 남편이 일찍 죽은 과부에게 각종 방법으로 자살을 종용하거나 환란의 와중에 정조를 잃은 여성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 관련자료

ㆍ열녀(烈女)
ㆍ열부(烈婦)
ㆍ절부(節婦)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