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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군

제목 낙랑군
한자명 樂浪郡
유형
시대 삼국 이전, 삼국 시대
관련국가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유의어 한사군(漢四郡)
별칭•이칭

[정의]

고조선(古朝鮮) 멸망 이후 한(漢)이 그 땅에 설치했던 지방 행정 기구인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

[내용]

기원전 108년, 한의 침공을 받아 항전하던 고조선이 멸망하였다. 한은 고조선의 옛 영토에 4개의 군, 곧 한사군을 설치하여 통치하였다. 낙랑군(樂浪郡)은 고조선의 수도였던 왕험성(王險城)에 설치된 조선현(朝鮮縣)을 중심으로 설정되어, 한사군 중 가장 중요하였다. 또 다른 3군은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 폐지되거나 한반도 밖으로 옮겨졌지만 낙랑군은 처음 설치된 위치에 계속 존속하였으며, 한이 멸망하고 진(晉)이 들어선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낙랑군은 기본적으로 한에서 파견한 지방관[태수(太守), 현령(縣令)]이 한의 제도를 가지고 통치하였으나, 토착 세력을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재지 수장(在地首長)에 의한 전통적 지배 방식을 어느 정도 인정하였다. 또 토착인들을 하급 관원으로 쓰면서 중국계 주민과 토착 주민 간의 융합을 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어느 정도 토착화된 것으로 여겨지며, 그 때문에 본국이 멸망한 후에도 상당 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낙랑군은 처음에는 조선현 및 11개의 속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3군의 폐지나 이동 이후 그 일부를 포함시키면서 영역이 확장되었다. 낙랑군의 관할 범위는 대체로 평안남도 일대와 황해도 일부 지역이었다. 서기전 45년에는 소속 현이 25개에 이르렀으며, 인구는 28만 명에 달하였다. 낙랑군은 고조선의 중심지에 설치되어 420년간 주변의 여러 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낙랑군 지역은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 고구려에 점령당해 고구려 영토로 편입되었다.

▶ 관련자료

ㆍ낙랑군(樂浪郡)
ㆍ낙랑(樂浪)
ㆍ한사군(漢四郡)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