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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 회의

제목 화백 회의
한자명 和白會議
유형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와 발해
관련국가 신라, 통일 신라
유의어 제간 회의(諸干會議)
별칭•이칭

[정의]

신라에서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던 귀족 회의체.

[내용]

중국 역사서 『신당서(新唐書)』 「신라전(新羅傳)」에는 화백(和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나라에 일이 있으면 반드시 여러 사람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화백이라 하였다. 한 사람이라도 의견이 다르면 결정하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화백 회의(和白會議)는 6개의 부가 연합⋅연맹하는 형태로 건국된 신라 초기의 국정 운영 방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6세기에 왕권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갖추어지기 전의 국정 운영 형태는, 왕이 주재한 회의에 참여하는 6부의 수장(首長)급 유력자인 간(干)들이 나라의 중요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방식이었다. 화백 회의는 이 전통을 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 귀족 회의체의 성격과 국정 운영 방식이 변화되었다. 귀족 회의체의 역할은 신하들이 의견을 교환한 후 합의된 내용을 왕에게 올리는 것에 그쳤으며, 왕이 그것을 참고로 하여 최종 결정한 후 왕의 이름으로 공표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화백 회의가 왕이 참석한 국정 최고 의결 기구에서 그 위상이 약화되어 신료들의 회의 기구로 바뀐 것이다.

한편 귀족 세력이 다시 강성해지는 신라 하대(下代)가 되면, 화백 회의가 다수의 진골 귀족이 참여하여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최고 의결 기구로 다시 강화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 관련자료

ㆍ화백 회의(和白會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