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택지적비
제목 | 사택지적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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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沙宅智積碑 |
유형 | |
시대 | 삼국 시대 |
관련국가 | 백제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백제 말의 고위 귀족인 사택지적(沙宅智積)이 만든 비(碑).
[내용]
1948년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에서 발견되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문자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백제 석비(石碑)로, 사택지적이 654년(백제 의자왕 14년)에 글을 쓰고 세운 것이다. 사택지적은 백제 후기의 최고 귀족 가문 중 하나인 사택씨 출신으로,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 대 최고위직인 대좌평(大佐平)을 역임했던 인물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비의 일부분으로, 크기는 높이 102cm, 너비 38cm, 두께 29cm이다. 화강암에 칸을 긋고 그 안에 4.5cm 정도 크기로 글자를 새겼으며, 4행 56자가 남아 있다. 비의 오른쪽 윗부분에는 원 안에 봉황을 새긴 문양이 있고, 붉은색을 칠한 흔적도 있다.
비문은 사택지적이 말년에 이르러 지난날의 영광과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여, 불교에 귀의하고 사찰을 건립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
비문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 문장이고, 글자체는 웅건한 구양순체(歐陽詢體)로 쓰여 있어, 백제의 높은 문화 수준을 잘 보여 준다. 또 당시 백제에서 불교가 번성했음을 보여 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 관련자료
- ㆍ사택지적비(沙宅智積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