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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회의

제목 제가 회의
한자명 諸加會議
유형
시대 삼국 이전, 삼국 시대
관련국가 고구려, 부여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부여 및 고구려 초기에 국정을 논의하고 결정했던 귀족 회의.

[내용]

고구려는 원래 독자적이고 자치적인 정치 공동체였던 5부가 연합⋅연맹하여 건국한 국가였다. 따라서 고구려 초기에는 5부의 유력 귀족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합의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다. 5부의 유력 귀족들은 원래 부족이나 지역 집단의 수장(首長)인 ‘가(加)’로 불렸기 때문에, 이 귀족 회의를 여러 가들이 모여 회의했다는 의미인 ‘제가 회의(諸加會議)’로 부른다. 부여에도 동일한 성격의 제가 회의가 있었다. 제가 회의는 신라의 화백 회의(和白會議)나 백제의 정사암 회의(政事巖會議)와 비슷한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제가 회의는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국가 최고의 국정 의결 기구였다.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 권력자인 왕이 있었지만, 왕도 제가 회의의 결정에 반대하기는 힘들었다. 심지어 왕의 퇴진이나 다음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는 일도 제가 회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등 제가 회의는 왕권을 크게 제약하기도 하였다.

초기 제가 회의의 의장은 가들의 대표이면서 여러 가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상가(相加)가 맡았다. 이는 제가 회의가 왕의 통제를 받지 않고 또 왕권과 대립되는 성격임을 보여 준다. 하지만 점차 왕권이 강화되면서 제가 회의의 권위와 역할은 축소되었다. 그 결과 2세기 말경에 이르면 왕이 임명한 국상(國相)이 의장이 되어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제는 왕을 중심으로 국정이 운영되며, 제가 회의가 왕권과 대립되기보다 왕을 보좌하는 신료 회의의 성격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 후기에 귀족 연립 정권이 수립되면서 유력 귀족들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자, 다시 제가 회의의 전통을 이은 귀족 회의체가 최고 국정 의결 기구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제가 회의(諸加會議)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