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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평창

제목 상평창
한자명 常平倉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상평청(常平廳)
별칭•이칭

[정의]

풍년에는 포(布)로 곡식을 사들이고, 흉년에는 곡식을 팔아 물가를 조절하여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

[내용]

전통 시대에는 풍년과 흉년에 따라 곡식의 값이 크게 차이가 났다. 이에 따라 흉년에는 곡식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 빈민들이 항상 존재하였다. 상평창은 풍년과 흉년에 따라 곡식의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으로, 곡식이 싼 풍년에 많은 곡식을 확보해 두었다가 흉년에는 비교적 싼 가격에 팔아 물가를 조절하고 아울러 이를 통해 빈민을 구제하던 기관이다.

상평창은 고려 성종(成宗, 재위 981∼997) 때 최초로 만들어졌는데, 고려 말에는 그 기능이 유명무실해졌다. 조선 건국 이후 상평창의 설립 건의가 꾸준히 이어졌으나 제도화되지 못하였다가,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에 이르러 각 도(道) 내의 한두 개 고을에 설치하여 시험적으로 운영하였다. 이후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상평창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조항이 삽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세조 대 이후 성종 대까지는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원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인하여 원활히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에서도 상평창의 역할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종(中宗, 재위 1506~1544) 대 진휼청을 설치하면서 당시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상평창과 건물을 함께 쓰고 관원도 진휼청(賑恤廳)의 관원이 상평창의 업무까지 겸임하게 한 조치가 있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이후에도 상평창은 크게 기능하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선혜청의 소속 기관으로 상평청(常平廳)을 설립하여 기존 상평창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 관련자료

ㆍ상평창(常平倉)
ㆍ상평청(常平廳)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