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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등록

제목 비변사등록
한자명 備邊司謄錄
유형
시대 조선 시대
관련국가 조선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조선 후기 국정 전반을 실질적으로 총괄했던 비변사(備邊司)의 활동 내용을 정리해 놓은 기록.

[내용]

1510년(중종 5) 비변사는 외적의 방어를 논의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설립되었다. 그런데 1554년(명종 9) 후반부터 잦아진 외적의 침입과 1555년에 발생한 을묘왜변(乙卯倭變) 등의 사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독립된 합의 기관으로 승격했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비변사가 최고 국정 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비변사등록』은 모두 273책의 필사본이다. 1617년(광해군 9)부터 1892년(고종 29)까지의 기록만이 남아 있다. 이 기간을 모두 계산하면 276년 동안의 기록이어야 하지만 임진왜란부터 1616년(광해군 8)까지 54년간의 기록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비변사가 임시 기구로 처음 설치되었던 1510년(중종 5)에서 1555년(명종 10)까지 45년간의 기록이 남아 있었는지의 여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다만 조선의 수준 높았던 기록 관리 체제를 생각해 볼 때 비변사에서 생산했던 문서나 기록들이 당연히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변사가 폐지된 1865년(고종 2) 이후의 기록은 표지에 ‘의정부(議政府)’ 또는 의정부의 약칭인 ‘정부(政府)’로 되어 있으나, 이는 비변사를 의정부 내로 합치고 그 조직을 존속시켜 기록한 것이기에 이전의 『비변사등록』과 체제가 동일하다. 따라서 『비변사등록』으로 간주된다.

비변사가 군사와 관련된 논의를 위해 설치되었기 때문에 『비변사등록』의 초기 기록에는 주로 국경 지역의 방어나 군사에 관련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비변사의 기능이 확대되어 국정 최고 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비변사등록』에는 정치, 경제, 사회 등 국정 전반에 걸친 내용들이 기록되었다. 따라서 『비변사등록』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과 함께 연대기적 성격을 가진 사료로 분류되어 높은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 관련자료

ㆍ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