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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창 양행

제목 세창 양행
한자명 世昌洋行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대한제국, 독일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883년(고종 20) 독일 마이어상사가 인천에 설치한 무역 상사의 지점.

[내용]

세창 양행은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에드발드 마이어(Edward Meyer)가 세운 무역 회사로 1873년 중국 톈진(天津), 1881년 홍콩에 지점을 설치하여 동아시아 무역에 진출했다. 1883년 인천이 개항되자 서양 무역 회사로는 최초로 인천에 지점을 설립하고 2층의 서양식 건물로 주재원의 숙소를 건축했다.

1885년에는 차관으로 은 10만 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조선 정부로부터 목포에서 인천 간 곡물 운반권을 획득했다. 1886년에는 상하이에 지점을 개설하여 중국과 조선 간 무역을 확장시켜 나아갔다. 또한 1886년 〈한성순보〉에 한국 최초로 광고를 게재했다. 세창 양행의 조선 진출은 당시 조선 정부의 외교고문으로 있던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ӧllendorf, 1848~1901)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세창 양행은 조선 정부의 위탁으로 전환국에서 사용할 화폐 주조 기계와 탄환 등의 무기를 수입했고, 인천에 화약 창고를 갖고 있었다. 그 외 곡물, 인삼 등을 수출하고 각종 서양 상품을 수입하여 판매했다. 세창 양행의 수입 상품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품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창 양행은 이권 사업을 얻기 위해 조선 정부와의 교섭에도 적극적이었다. 1897년에는 금성(金城)의 당현광산(堂峴鑛山) 채굴권을 획득했다. 1898년에는 인천과 당현광산 사이의 전선 가설권을 요청했다. 1899년에는 한국 국기를 상표로 사용할 것을 요청했지만, 조선 정부로부터 거절당했다. 또한 1900년에는 경원선 철도 부설권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였으나 실패했다.

▶ 관련자료

ㆍ세창 양행(世昌洋行)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