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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병참 기지화 정책

제목 대륙 병참 기지화 정책
한자명 大陸兵站基地化政策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병참 기지화 정책(兵站基地化政策)
별칭•이칭

[정의]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조달하는 병참 기지로 만들기 위해 실시한 일련의 정책.

[내용]

1929년 세계 대공황의 영향으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블록 경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 상품 수출에 큰 타격을 받았다. 공장 생산이 멈추게 되고 도시에는 실업자가 만연했다. 농촌에는 농업 공황으로 쌀값이 폭락하여 큰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 상황에서 일본은 새로운 투자처와 상품 수출 지역을 찾았고, 결국 대륙 침략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이는 1931년 만주 침략과 1937년의 중일 전쟁, 1941년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다. 일제는 이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을 종래의 식량 공급지⋅상품 판매 시장으로서뿐만 아니라 과잉 일본 자본의 투자처이자 전쟁 수행을 위해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병참 기지로서 재조정해 갔다.

‘병참 기지’란 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군사 작전에 필요한 인원과 물자를 보급하고 지원하는 근거지를 뜻한다. 조선에서 일제의 병참 기지화가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중일 전쟁 이후였다. 중일 전쟁이 장기화하는 시점인 1938년 9월 각 도 산업부장 회의에서 당시 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조선의 대륙 병참 기지화를 표명했다. ‘대륙’이라는 표현이 부가된 것은 대륙 침략 전쟁 수행 시 일본 본국으로부터 해상 수송로가 단절될 경우 조선만으로 병참 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조선이 대륙 병참 기지로서 최적의 장소임을 강조했고, 병참 기지로서의 역할 수행을 위해 조선의 산업 분야를 다각화하려 했다.

대륙 병참 기지화의 구체적인 실천은 농공 병진 정책(農工竝進政策)이었다. 농공 병진 정책은 이미 1930년대 우가키 가즈시게(宇垣一成) 총독 시기부터 표방된 것으로, 사회 안정 차원에서 농촌 진흥 운동과 일본의 독점 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의 공업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었다. 이 방식이 기본적으로 유지되는 가운데, 1938년 이후부터는 전쟁을 뒷받침하는 중공업과 기계 공업 등 군수 공업이 더 강조되는 양상을 띠었다. 이어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조선의 병참 기지화 정책은 비행기 제작을 중점 산업으로 하고 경금속과 철강, 석탄, 기계 공업 등으로 중심점이 옮겨갔다.

이러한 병참 기지화 정책은 실제로 농업 생산력을 담보하기 위한 비료를 생산하는 화학 공업, 농업용 및 광산용 기계 기구 공업, 광물 자원을 가공하는 금속 공업 등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 독점 자본의 조선 진출이 이루어졌고, 이들 독점 자본과 총독부가 결합한 산업 개발과 생산력 증강이 이루어졌다. 병참 기지화는 결국 한반도 전체가 일제의 침략 전쟁을 수행하는 보급 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가는 과정을 의미했다. 이는 일본제국의 전쟁 수행 목적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선 경제 내부의 필요성 및 조선 경제와의 유기적 발전, 그리고 한국인의 삶의 질 향상과는 무관했다. 따라서 한국인 중소자본 및 가내 공업은 철저히 배제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전쟁이 확대되고 치열해질수록 한국인의 피해는 더욱 커져갔다.

▶ 관련자료

ㆍ대륙 침공을 위한 후방 기지 역할
ㆍ대륙 침략을 위한 전쟁 물자 생산
ㆍ병참 기지(兵站基地)
ㆍ병참 기지화 정책(兵站基地化政策))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