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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천태종

제목 해동 천태종
한자명 海東天台宗
유형
시대 고려 시대
관련국가 고려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1097년(숙종 2) 완공된 국청사(國淸寺)의 주지로 취임하여 개창한 종파.

[내용]

의천은 본래 화엄종(華嚴宗)의 승려였으나 송(宋)나라에 들어가 천태교학(天台敎學)을 공부한 후 고려로 돌아와 해동 천태종(海東天台宗)을 개창하였다.

의천은 천태종의 주요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교관겸수(敎觀兼修) 사상을 제창하였다. 교관겸수는 불교의 교리 체계인 교(敎)와 실천 체계인 지관(止觀)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사상으로, 지관은 마음의 번뇌를 멈추고 자신의 진정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관겸수는 교종(敎宗)과 선종(禪宗) 두 가지를 통합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고려 초에는 태조(太祖, 재위 918∼943)의 후원에 힘입어 선종이 중앙과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떨쳤으나, 고려의 통치 체제가 안정되면서 화엄종(華嚴宗)과 법상종(法相宗) 등 교종의 영향력이 더욱 확장되었다. 화엄종 출신인 의천은 교선 양 종파의 대립을 무마하고 나아가 양 종파의 통합을 달성하기 위해 천태종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교종은 화엄종을 중심으로, 선종은 천태종을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한 것이다.

의천이 죽은 뒤 천태종은 한때 침체되었으나, 요세(了世)에 의해 중흥되었다. 그는 1216년(고종 3) 전라도 만덕산(萬德山) 백련사(白蓮寺)에 자리를 잡고, 사회 혼란과 불교 타락에 대한 자각과 반성을 촉구하는 백련결사(白蓮結社)를 결성하는 등 천태종 중흥에 힘썼다. 이는 고려 후기 불교계의 개혁을 촉구한 결사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원(元) 간섭기에는 개경(開京)의 묘련사(妙蓮寺)를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1308)은 1284년(충렬왕 10) 자신의 원찰로 개경에 묘련사를 창건하였는데, 이후 이곳은 천태 사상을 펼치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백련사의 분원 역할도 하였다. 고려 말 조선 초 몇 차례 변화를 거친 천태종은 조선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에 이르러 불교 종파가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될 때 소멸되었다.

[의의]

고려 전기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추구하기 위해 의천이 개창한 천태종은 고려 후기에는 결사 운동을 통하여 불교계의 개혁과 혁신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 관련자료

ㆍ천태종(天台宗)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