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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제목 아나키즘
한자명 Anarchism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유의어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
별칭•이칭

[정의]

어떠한 강권이나 지배에 반대하고 민중의 행동에 의한 사회 혁명을 통해 개인의 절대 자유가 보장되는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사상.

[내용]

어원은 그리스어 anarchos로, ‘지배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아나키즘 사상가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은 아나키(anarchy)를 ‘정부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의 게무야마 센타로가 1902년 『근세 무정부주의』라는 책을 펴내며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뒤부터 대체로 ‘무정부주의’가 아나키즘의 번역어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이 정당 활동에 참여하고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대부분 ‘무정부주의’보다는 ‘아나키즘’이라는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추세다.

아나키즘은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한다. 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을 권력과 사회 제도 및 국가로 본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사회 제도와 국가 등의 억압을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 의지에 따라 운영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때 국가 권력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최대의 강제적인 권력으로 상정되는데, 아나키스트들은 국가를 타도할 때 민중의 직접 행동에 따른 사회 혁명의 방식을 추구했다. 소수가 지도하는 중앙집권적 조직도 또 다른 권력의 교체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러한 아나키즘은 대체로 18세기 말 서구 자본주의 사회가 자리 잡으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다.

아나키즘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했지만, 대체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을 분류할 수 있다. 전자는 개인의 절대성과 자주성을 강조하면서 제한된 형태나마 사유 재산을 인정한다. 영국의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과 독일의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슈티르너의 경우 자신에 대한 어떠한 국가 권력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것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자는 권력의 횡포와 계급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사회 변혁에 강조점이 있으며, 재산의 공유를 주장한다. 프랑스의 프루동(Pierre J. Proudhon)과 바쿠닌(Mikhaill Bakunin), 크로포트킨 등이 대표적이다. 프루동은 노동자가 관리하는 기업을 경제 단위로 지역과 국가로 연합되는 사회를 지향했다. 바쿠닌은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농민 단체의 연합이 생산 수단을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소비재에 대해서는 사유를 인정했다. 크로포트킨은 소비재까지도 공유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의 경우 아나키즘은 1910년 국권 상실을 계기로 민족 해방 운동의 이념으로 수용되었다. 아나키즘은 당시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던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사상으로서 각광받았다. 그 과정에서 상호부조론이 수용되었다.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일본 제국주의를 최고의 강권으로 규정하고 이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 이들은 개개인의 자유를 추구한 것이었고, 민족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민족주의자들이 추구하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했고, 공산주의 세력이 주장했던 프롤레타리아독재 또한 강권으로 규정하고 배격했다.

일제 시기 한인 아나키스트 내부에도 방법론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첫째는 의열 투쟁을 통한 직접행동론이다. 의열 투쟁은 민중을 각성시킬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서 의열단의 활동이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는 혁명 근거지 건설론이다. 이는 농촌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농민 자치의 아나키스트 사회를 건설해 민족 해방 운동과 아나키스트 혁명의 근거지로 삼아 주변으로 확산시키려는 방법이다. 이는 재중국 한인 아나키스트들이 실천했다. 셋째는 파업과 태업 등 경제적 직접행동론과 일상투쟁론이다. 이는 국내나 재일본 아나키스트들이 주로 실천했다.

그러나 의열 활동에 대한 계속된 검거는 운동 역량을 크게 약화시켰고, 혁명 근거지 건설은 일제의 만주 침략으로 실패하게 된다. 일상투쟁론도 소수의 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아나키스트들은 1930년대 후반 민족전선론을 제기하면서 민족국가 건설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민족 국가 수립을 우선시하며 국가 수립 이후에 아나키스트 사회를 달성하자는 단계혁명론을 견지했다. 또한 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지지했다.

▶ 관련자료

ㆍ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