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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철교

제목 압록강 철교
한자명 鴨綠江鐵橋
유형
시대 근대
관련국가 중국
유의어
별칭•이칭

[정의]

1911년 11월 중국의 단둥(丹東)과 한국의 평안북도 신의주 사이에 개통된 개폐식 철교.

[내용]

일제는 러일 전쟁 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하고 중국 대륙 진출을 위해 한반도와 만주를 잇는 철도 부설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육군의 수송력을 극대화하려 했다. 일제는 압록강 철교에 대해 1909년 3월 설계 작업을 마치고 8월에 착공하여, 1911년 10월에 준공하고 11월 1일 개통식을 했다. 총 길이 944m이며, 압록강 하구에서부터 상류 방향 45㎞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중앙에 철도를 부설하고 그 양쪽에 2.4m짜리 보도를 깔았다. 총 12개의 교각 중 압록강을 오르내리는 선박을 통과시키기 위해 단둥 쪽에서부터 네 번째 교각 위에 회전식 개폐 장치를 부설했다. 이를 열면 십자(十字)가 되고 닫으면 일자(一字)가 되도록 설계했다. 겨울철 결빙기에는 여닫지 않았다.

압록강 철교의 개통으로 한반도의 부산에서 의주에 이르는 철도(경부선과 경의선)와 남만주 철도의 안봉선(安奉線)이 직접 연결되었다. 철교가 준공되면서 한반도와 만주의 철도는 동일 궤도로 접속했다. 서울 남대문에서 출발한 급행열차가 같은 날 만주의 창춘(長春)까지 직통 운행하게 되었다. 또한 경부선과 경의선, 그리고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의 모든 역 사이의 화물 운수가 개시되었다. 1912년부터는 급행열차 운행이 부산에서 창춘까지 확대되었다. 이로써 한반도와 만주의 철도가 동일 궤간을 가지고 동일 궤도상에 접속함으로써 열차 운행에서의 한반도와 만주 사이의 국경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압록강 철교는 1934년 11월부터 교량 보존 차원에서 회전을 중지했다. 이 다리는 한국 전쟁 당시인 1950년 11월 9일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었는데, 중국 쪽에서 연결된 교량의 일부는 아직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끊어진 다리’라는 의미에서 압록강단교(鴨綠江斷橋)라고도 불린다. 현재 이 다리는 중국과 북한 양쪽에서 각각 전망할 수 있는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일제는 일본과 중국 사이의 인적⋅물적 교류 증대에 대응하고 중국 침략이라는 군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철도 수송을 강화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1937년 단선형 철교인 재래교의 강 상류 쪽 약 70m 지점에 새로운 다리 건설에 착공하여 1943년 4월 개통하였다. 이 다리는 길이 943m의 복선형 철교로 건설되었으며 개폐식이 아닌 고정식 다리이다. 1990년 북한과 중국이 합의하여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로 개칭했다. 사람과 차량이 모두 통행할 수 있다.

압록강 철교의 개통으로 군사적으로는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수송의 길이 단축되었으며, 한국과 중국 사이에 인적 교류 및 물적 유통이 더욱 신속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 관련자료

ㆍ압록강 철교(鴨綠江鐵橋)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