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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특별한 체험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사람들.
바로 우리네 밥상의 터줏대감인 김치를 담그기 위해서인데요. 김치를 담그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문화 김치.
함께 김치를 담그며 정을 나누는 김장은 과거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전통문화인데요.
그렇다면 왜, 언제부터 김치를 먹기 시작했을까요?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현대인의 밥상에 빠지지 않는 반찬 김치는 선조들의 밥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반찬이었습니다. 명칭은 달라도, 김치는 오랜 시간 한국인 밥상의 터줏대감 자리를 지켰는데요.

장을 곁들이면 한여름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긴 겨울을 넘긴다.

-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고려 시대 이규보의 시에서 김치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고려 후기에 순무를 가지고 여름에는 장에 절여 장아찌처럼, 겨울에는 소금에 절여 짠지처럼 김치를 담가 먹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시간이 흘러 조선 전기에는 좀 더 다양한 채소와 양념으로 김치를 만들었습니다.

내 집 동산에 몇 이랑 빈 땅이 있어
해마다 넉넉히 채소를 심네.
순무랑 무랑 상추랑
미나리랑 토란이랑 자소랑
생강 마늘 파 여뀌 오미 양념을 갖추어
데쳐선 국 끓이고 담가선 김치 만드네.

- 서거정 『속동문선』

조선 전기 서거정의 시에 그 내용이 나와 있는데요. 순무, 무, 상추, 미나리, 토란 등에 생강, 마늘, 파 등으로 양념을 해서 김치를 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전기에는 김치의 국물을 흥건하게 해서 김치를 담갔는데요. 왜일까요?

“한국인은 밥이 주식입니다. 밥을 먹기 위해선 부드러운 국물이 필요했던 거죠. 부유층보다 서민들이 국을 만들어 먹기에 부족했기 때문에 국물 있는 김치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양향자 이사장 / 세계음식문화연구원

7~8월에 가지나 오이를 씻지 않고 행주로 잘 닦아서 소금 3되와 물 3동이를 1동이가 되게 달인 다음 식기를 기다린다. 먼저 오이를 항아리 속에 넣고 백두옹 줄기와 잎을 사이사이에 넣어 항아리에 담는다.

- 김유 『수운잡방』

조선 전기 요리책인 수운잡방에 오이 김치 담그는 방법을 보면 오이 김치를 담글 때 백두옹, 즉 할미꽃을 함께 넣었는데요. 할미꽃의 강한 항균성이 김치가 쉽게 상하지 않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추운 겨울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던 선조들은 채소의 저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도 저장 때문이었습니다. 채소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관하기 위해 소금이나 장에 절여서 저장했던 것이죠.

그리고 소금을 적게 넣고도 저장성을 높이는 발효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공기가 통하는 옹기에 김치를 저장하는 이유도 김치의 발효를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발효 과정 덕분에 더 영양가 있고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었는데요. 이처럼 김치를 발효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은 과거부터 전해오는 한국 김치의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고추가 들어간 빨간 배추김치를 먹었을까?

현대인에게 익숙한 빨간 배추김치.
한국 대표 김치인 빨간 배추김치는 사실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세종대왕께서도 빨간 김치를 좋아했을까요?”
“유감스럽게도 세종대왕께서는 빨간 맛있는 김치를 못 잡숴보셨다. 왜냐하면 그때는 고추가 없었거든” 이랬어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왔을 때가 임진왜란 이후라고.

김정숙 원장 / 광주김치아카데미

고추가 빨갛게 익으면 매운 초 생강을 뒤따른다. 초를 항아리 속 채소와 섞으니 김치는 맛이 있고 국그릇에 넣은 계란 눈같이 엉기고 쑥은 부드럽네.

- 이서우 『송파집』

매운 초, 고추를 김치에 넣기 시작한 것을 이서우의 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빨간 김치는 조선 후기에서야 등장했는데요. 뒤늦게 등장한 빨간 김치는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배하기 쉬운 데다 강력한 산화 방지 성분까지 있는 고추를 김치에 넣으면 당시 귀했던 소금을 적게 넣어도 비슷한 저장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고추는 젓갈의 비린 맛을 감춰주고 김치에 단맛과 감칠맛을 더해주는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고추를 넣음으로써 김치가 맛은 물론 저장과 영양 면에서 단계 더 발전한 것인데요. 김치에 고추를 넣게 되면서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젓갈의 사용도 보편화됐다고 합니다.

김치에서 양념만큼 중요한 것이 있죠. 바로 배추인데요. 선조들은 언제부터 배추김치를 담갔을까요?

“조선 시대까지는 거의 음식의 재료로 쓰인 기록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워낙에 귀한 재료였기 때문에 우리나라 땅에선 재배가 잘 안 됐어요.”

박채린 문화융합단장 / 세계김치연구소

당시 재배기술이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속이 꽉 찬 배추와 달리 조선의 배추는 속이 꽉 차지 않은 배추였는데요. 그래서 1800년대에는 배추만을 재료로 쓰는 김치보다는 배추와 무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가 더 흔했다고 합니다.

19세기 들어서야 배추 종자 채취에 성공한 조선.
통배추 재배가 점차 확산되면서 무김치에서 배추김치 중심으로 변했는데요. 그중에서도 통배추 김치가 배추김치의 주류가 됐습니다. 그리고 1940년대 들어서면서 김치도 국물 있는 김치가 아닌 국물 없는 김치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는데요.

결국 1800년대 말까지 문헌상으로 찾아보기 힘들었던 통배추김치가 20세기에 접어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김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김장철이 되면 가까운 이웃이나 친족이 모여 함께 김치를 담그며 정을 나누던 김장.
2013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인의 밥상을 지킨 김치.
선조들의 노력과 지혜로 이어져 온 한국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필로그]
우리가 꼭 알아야할 한국사 속 문화예술 상식

1.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채소를 오래 저장하기 위해서다.
2. 조선 후기 김치에 고추를 넣으면서 젓갈의 사용이 보편화되었다.
3. 빨간 통배추 김치는 1900년대 이후에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해설

1. 한국인의 식생활과 김치

김치는 한국의 대표적인 발효음식이며,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빠뜨릴 수 없는 기본 음식이자 필수음식으로 여겨져 왔다. 이러한 김치는 맛과 영양에서도 높이 평가되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역사적 산물이자 문화라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2.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이유는?

1) 김치의 기원과 명칭

한반도에서 김치류를 언제부터 먹어왔는지, 누가 어디에서 처음 만들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김치류가 중국에서 전래되었다는 주장과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으로 나뉜다. 둘 중 어느 주장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김치는 중국의 절임채소류와는 구별되는 뛰어난 저장 및 발효기술을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독창성을 지닌다.

김치는 菹(저), 漬(지), 虀(제), 沈菜(침채) 등 다양하게 표기되어 왔는데, 현재의 ‘김치’라는 명칭은 향찰식 한자어인 ‘沈菜’가 딤>짐>짐츼>김치와 같이 변화하여 오늘날 표준어로 정착한 것이다. 또한 김치를 가리키는 순우리말 ‘디히’는 ‘지’로 변화하여 김치류 명칭어의 접미사 또는 단독으로 김치를 가리키는 방언으로 사용되고 있다.

2) 고려 이전 및 고려시대의 김치

한반도에서 농경이 시작된 이후 김치류를 먹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고, 신라 때 김치를 담가 저장했다는 장수사의 침채옹 전설 등이 기록으로 전해지지만, 한반도에서 일상음식으로 김치를 먹었음을 알려주는 문헌기록은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동국이상국집』이 최초이다. 이를 통해 당시 순무를 장이나 소금에 절인 형태의 김치를 먹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조선 전기의 김치

조선 전기에는 순무와 무, 오이를 주재료로 한 국물 있는 김치가 주류이고, 김치를 담글 때 주로 소금과 물을 넉넉히 붓는 방식을 이용하였다. 특히 오이김치는 김치의 저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백두옹(할미꽃), 천초 등과 같이 항균성이 강한 식물을 첨가하기도 했다. 또한 문헌에서는 곤쟁이젓과 새우젓 등 젓갈이 쓰인 김치가 16세기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 『주초침저방(酒醮沉菹方)』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언제부터 고추가 들어간 빨간 배추김치를 먹었을까?

1) 조선 후기의 김치와 고추

조선 후기에는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유입되어 재배되기 시작하였고, 17세기에는 고추가 김치에 쓰이면서 기존의 매운맛을 내는 데 쓰던 천초를 대체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고추의 사용으로 고추와 젓갈을 같이 쓰는 양념 김치가 등장하였다. 고추는 재배가 쉽고, 김치에 넣으면 조선시대에는 귀했던 소금을 기존보다 적게 넣어도 저장성을 높여주었다. 게다가 젓갈의 비린 맛을 감춰주고 김치의 발효를 도와 맛과 영양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고추의 이용이 비교적 빠르게 확산되었다. 한편 19세기에는 김치에 배추의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배추 단독으로 김치를 담그기보다는 무와 함께 만드는 섞박지 형태의 김치가 주류를 이루었다.

2) 개화기 및 일제강점기의 김치와 배추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는 개성배추와 서울배추가 보급되고, 중국 화교 등을 통해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면서 배추김치의 비중이 커졌다. 배추의 크기가 커지면서 배추통김치를 만들 때 배추의 절임법과 양념법도 변화하였다. 배추를 씻은 후 소금에 절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소금물에 절인 후 씻는 방식으로 순서가 달라졌고, 양념을 배추 위에 켜켜이 얹어 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배춧잎 사이에 김치소를 끼워 넣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또한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과 부재료가 다양해지고, 김치의 양념과 제법이 현재와 거의 같아지는 시기이다.

3) 해방 이후의 김치

해방 이후에는 반결구 배추인 개성배추와 서울배추가 자취를 감추고, 결구성 호배추가 일반화되는 시기이다. 또한 배추통김치를 담글 때 항아리에 나중에 따로 국물을 붓는 방식이 거의 사라지고, 전라도 지를 만드는 방식처럼 국물 없이 담그는 방식이 확산되었다. 또한 젓갈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기존에 가난한 계층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던 젓갈을 계층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새우젓, 조기젓, 갈치젓 등 지역에 따라 선호하는 젓갈의 차이도 희미해졌다.

4.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 문화, 김장

겨울의 반양식을 마련하는 김장은 조선 후기에 이미 음력 10월의 세시풍속으로 중요하게 시행되었고, 해방 이후까지도 전국적으로 큰 행사였다. 남북으로 긴 한반도의 특성상 지역에 따라 김치의 재료와 즐겨 쓰는 젓갈의 종류, 김장의 시기와 양, 김치의 저장 방식이 달랐다. 북부 지방으로 갈수록 양념을 적게 쓰며 싱거운 김치를 즐겨 먹고, 겨울의 평균기온이 높은 남부지방으로 갈수록 김치가 일찍 변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치의 맛이 대체로 맵고 짰다.

현재는 쌀 소비의 감소에 따라 김치의 소비량이 줄고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가정에서 담그는 김장의 양도 감소하였다. 또한 아파트 거주자가 확산되면서 김치를 대량으로 제조하거나 보관할 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절임배추를 구입하여 김장을 담그거나 김치냉장고의 이용, 판매 김치의 소비가 활발해진 상황이다. 그러나 김치를 만들고 나눠먹는 김장은 여전히 지속되는 중요한 한국문화이며, 그 공동체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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