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광복군
임시 정부는 1940년 9월 17일에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광복군은 정신적으로는 대한 제국의 국군을 계승하고, 인적으로는 독립군을 계승해 창설된 임시 정부의 국군이었다. 임시 정부의 군사 활동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전후 연합국의 지위를 획득한다는 전략으로 연합군과 공동 대일 항전을 전개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해외 무장 세력의 통일을 도모하고, 직접적인 국내 진입 작전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 광복군의 전신인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가 서안으로 떠나면서(1939. 11. 17). 앞줄 왼쪽: 박영준·엄항섭·박찬익·김구·유진동·김인/ 가운뎃줄 왼쪽: 김동수·박기성·송영집(엄익근 부인)·하상기·평지성 부인·김작생·엄익근·나월환/ 뒷줄 왼쪽: 맹조화·이하유·평지성·김원영·조시제·현이평·이재현·주지
- 광복군 배지. 왼쪽: 광복군 총사령부·광복군 제2지대 ·광복군 제3지대 배지
- 광복군 훈련 교재. 교련 구령 규정표, 국문 철자, 정훈 대강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정훈처가 발행한 기관지《광복》
- 광복군 모자
- 광복군 군복
- 한국 광복군 성립 전례식의 개회를 선포하는 김구(1940. 9. 17). 왼쪽: 김학규·김구
- 대회사를 하는 김구. 한국 광복군 성립 전례식이 1940년 9월 17일 중경 가릉빈 관에서 거행되었다. 임시 정부 국무 위원과 중국인, 기타 외국인 등 200여 명이 참석하였다.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경과 보고를 하는 조소앙
- 중국 정부를 대표하여 축사하는 류치(劉峙) 장군
- 치경문(致敬文)을 낭독하는 김정숙
- 이청천 총사령에게 헌기(獻旗)하는 민영주. 왼쪽: 이청천·민영주·김구
- 답사하는 이청천 총사령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후 한중 대표 기념 촬영. 왼쪽: ◯·◯·◯·◯·◯·홍진·이청천·김구·차리석·◯·이시영·◯·◯·◯·조완구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후 한중 대표 기념 촬영. 왼쪽: ◯·이청천·김구·류치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후 이청천 총사령과 김구 주석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에 참석한 내빈 방명록
- 미주 동포들의 광복군 성립 축하식(1940. 10. 20)
- 한국 청년 전지 공작대 성립 1주년 기념(서안, 1940. 11. 11). 첫째 줄 왼쪽: ◯·◯·조인제·나태섭·황학수·송호성·조성환·신익희·고흥륜·김광/ 둘째 줄 왼쪽: 한형석·◯·◯·현이평, 오른쪽 끝 나월환/ 셋째 줄 왼쪽: 허곤·오성행·맹조화·김해성/ 넷째 줄 왼쪽: 이도순·◯·김동수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서안 판사처 직원 일동(1940. 12. 22). 앞줄 왼쪽: 유해준·이준식·황학수·김학규·김광 / 뒷줄 왼쪽 : 노태준·안춘생·조인제·◯·노복선
-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 총무처 직원 일동(서안, 1940. 12. 26). 앞줄 왼쪽: 지달수·조경한·이복원·황학수·조성환·송호성·이준식·◯·조시원/ 가운뎃줄 왼쪽: 노태준·노복선·안춘생·고운기·서파·이건우·김학규·오광심·조순옥·이복영/ 뒷줄 왼쪽: ◯·나태섭·민영구·김광·유해준·조시제·조인제·◯·◯·전태산
- 광복군 제2지대 신년 경축 대회(1941)
- 한국 광복군 제5지대 성립 기념(1941. 1. 1). 둘째 줄 왼쪽: ◯·◯·◯·◯·◯·◯·◯·나월환·송호성·황학수·조성환
- 한국 광복군 징모 제3분처 위원 환송 기념(1941. 3. 6). 앞줄 왼쪽: 박찬익·조완구·김구·이시영·차리 / 가운뎃줄 왼쪽: 최동오·김문호·신정숙·김응삼·이지일·김붕준/ 뒷줄 왼쪽: 조성환·조소앙·이청천·이범석·양우조
- 광복군 훈련
- 한국 광복군 제2지대(1942. 4). 광복군 제2지대는 조선 의용대의 광복군 편입이 결정된 후 성립되었다. 종전의 제1·2·5지대를 통합하여 새로운 제2지대를 수립하였다.
- 광복군 제1지대 대원(1942. 7). 민족 혁명당이 임시 정부에 참여하면서 조선 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로 편제되었다.
- 훈련 중인 광복군
- 중앙 전간단 한국 청년 훈련반 제3기 졸업생 일동(낙양, 1942. 10. 1).
- 훈련 중인 광복군
- 한국 광복군 인면 전구 공작대(1943). 영국군의 요청으로 9명의 광복군이 인도와 미얀마 전선에 투입되었다. 앞줄 왼쪽: 나동규·김성호/ 뒷줄 왼쪽: 김상준·문응국·박영진·한지성·베이컨(Roland C. Bacon 영국군 연락 장교)
- 훈련 중인 광복군(1943. 6. 6)
- 경계 중인 광복군(1943. 6. 6)
- 영국군과 같이 활동한 인면 전구 공작 대원들(인도 뉴델리, 1943. 8. 29). 앞줄 왼쪽: 김성호·한지성·베이컨(Roland C. Bacon 영국군 연락 장교)·송철/ 뒷줄 왼쪽: 문응국·김상준·박영진·최봉진·나동규
- 소예완변구(蘇豫皖邊區) 간부 훈련반 부설 한국 광복군 훈련반 제1기생(1944. 8. 1)
- 중국 군관 학교 제10분교 한국 광복군 훈련 반원들(1944. 9). 앞줄 왼쪽: 김우전·변영근·김용민·교관 신송식·중국인 교관·○·김유길·노능서·이상걸/ 뒷줄 왼쪽: 김학규·차약도·홍석훈·안광언·○·김영록·전리호·석근영·한성수·홍기화·이평산
- 중경에서 광복군 제1지대와 제2지대 대원들(1945)
- 한국 광복군 제3지대 창설 기념(1945. 6. 30)
- 광복군 제3지대원과 OSS 윔스 대위(곤명, 1945. 7). 앞줄 왼쪽: 김우전·정윤성/ 뒷줄 왼쪽: 이평산·○·윔스(Clarence N. Weems)
- OSS(미국 전략 첩보국) 도노반 국장과 국내 진입 작전을 협의하고(서안, 1945. 8. 7). 왼쪽: 엄항섭 임시 정부 선전 부장·김구 주석·이청천 광복군 총사령·이범석 광복군 제2지대장·OSS 도노반(William J. Donovan) 국장
- 중국 산동성 유현에 불시착한 국내 정진 대원들과 중국 인사들(1945. 8. 19). 광복군 제2지대원과 OSS 대원들은 일제 항복 후인 8월 18일 여의도에 진입했다가 본국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저항하는 일본군 때문에, 입국한 지 20여 시간 만에 서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연료 보급 때문에 중국 산동성 유현에 불시착하였다.
- 한미 합동 작전을 전개한 광복군 제2지대 국내 정진 대원(1945. 8. 20). 왼쪽: 노능서·김준엽·장준하
- 광복군 제2지대 간부와 미국 OSS 대원(1945. 9. 30). 앞줄 왼쪽: 노태준·사전트(Clyde B. Sargent)·이범석·안춘생·노복선/ 뒷줄 왼쪽: ○·이재현
- 광복군 제2지대 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