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의흥)삼군부
고려 말 이래의 삼군총제부를 태조 2년에 義興三軍府로 개칭하고 병권을 관장시키면서 성립되었고, 정종 2년에 중추부와 함께 삼군부로 개칭되었다 가 태종 원년에 승추부로 개편되면서 소멸되었다.073)
그 관장한 일은 중앙의 10위와 각 지방에서 번상하여 시위하는 주군병사 의 통할 등 군사 전반에 걸친 통어권을 관장하였다.074) 구성원은 성립될 때에는 중·좌·우군에 각각 절제사(종친·대신, 1·2품?)가 있었다. 태조 3년 이후 에 진무소 및 중·좌·우군과 판사(1품)·절제사(2품)·진무(정3 당하∼종6)로 조정되고, 정종 2년에 중·좌·우군과 판사(종1)·지삼군부사(정2)·총제(종2)로 개편되면서 운영되었다.075)
태조 3년으로부터 7년까지는 좌시중 趙浚과 판삼사사 鄭道傳이 판사를 겸하고 군정을 총관함에 따라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였다. 특히 정도전이 태조 의 寵信을 토대로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함에 따라 도평의사사의 군정 간섭을 배제하고 도평의사사와 양립하는 권부가 되었다.
073) | ≪定宗實錄≫권 4, 정종 2년 4월 신축. ≪太宗實錄≫권 2, 태종 원년 7월 경자. 그러나 명칭상으로는 소멸되었지만 그 기능상으로 삼군도총제부(태종 3년 6월∼9년 8월), 삼군진무소(태종 9년 8월·태종 14년∼18년 8월·세종 14년 3월∼세조 3년 4월), 義建府진무소(태종 18년 8월∼세종 즉위년 9월), 삼군부(세종 즉위년 9월∼14년 3월), 오위진무소(세조 3년 4월∼12년 정월) 및 오위도총부제(세조 12년 정월 이후)의 운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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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 閔賢九, 앞의 책, 107∼109쪽. 의흥삼군부가 성립할 때의 10위는 義興親軍左·右衛, 鷹揚·金吾·左右·神虎·興威·備巡·千牛·監門衛였다. |
075) | 閔賢九, 위의 책, 265∼266쪽. 판사는 태조 3년 정월부터 확인되었고, 진무소는 태조 7년에 확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