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밀교신앙
밀교 또한 대중성에 있어서는 정토에 못지 않다. 한국에서의 밀교신앙은 그 상징적 수행체계를 통해 卽身成佛을 목표로 하는 敎義보다는 眞言·陀羅尼와 같은 주문을 욈으로써 消災·治病 등을 희구하는 현세이익적 성향을 강하게 보여왔다. 조선시대에 선·교사상이 퇴조하는 가운데서도 유독 밀교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같은 신앙적 특성 때문이라 하겠는데, 그 신앙은 계층이나 시대의 구별없이 유행하였다. 성종 때 인수대비가 왕의 消盡怨魔를 위해 五大眞言集을 간행한 것을 비롯하여, 중기 이후로 갈수록 僧俗이 함께 협력하는 가운데 무수한 眞言集·陀羅尼·儀式集이 改板 간행되고 있음이 그것을 말해 준다.0764) 중종·명종·선조·현종 등이 齋·消災道場·祈雨 등 법회를 설행했던 것도 밀교신앙 유행의 일면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법회는 으레 밀교의식이 중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밀교신앙은 특히 민중과의 결합 속에서 더욱 확고해져 갔다. 조선 중·후기에는 불교의례 등을 통해 민중이 불교신앙의 주체를 형성하게 되는데,0765) 이 과정에서 밀교신앙이 민중에 가장 폭 넓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