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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도

제목 사신도
한자명 四神圖
유형
시대 삼국 시대
관련국가 고구려
유의어 신수도(神獸圖), 사수도(四獸圖), 사령도(四靈圖)
별칭•이칭

[정의]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나타내고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전설상의 신비한 동물[神獸]인 사신(四神)을 그린 그림.

[내용]

사신은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이른다. 동서남북에서 우주의 질서를 지키는 사신의 개념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후한(後漢, 25~220)대에 이르러 사신은 방위신(方位神)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후 회화와 공예의 주제로 많이 표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지면서 사신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고분 벽화 자체가 중국 장의(葬儀) 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사신도의 유입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는 고구려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어 단순한 중국 문화의 수입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4~5세기에 그려진 초기 고분 벽화에서 사신은 주로 천장에 해, 달 등과 같이 그려져 우주를 지키는 방위신 내지는 상상 속의 동물로 표현되었으나 벽화의 가장 주된 소재는 아니었다. 무덤 벽면에는 일상생활 풍속도가 주로 그려졌다. 하지만 6세기 이후에 그려진 고분 벽화에서는 사신도가 가장 중요한 그림의 제재로 벽면에 등장한다. 사신은 단순한 방위신의 성격에서 벗어나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 나아가 고구려 중심의 천하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격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백제에서도 공주 송산리 6호분이나 부여 능산리 고분에 사신도 벽화가 그려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제 사신도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그려졌다고 보기도 하지만, 백제가 중국 남조(南朝)와 활발하게 교류했던 점을 고려하면 중국 남조 문화를 도입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고려 시대 이후로는 무덤 안에 벽화로 사신도를 그린 경우가 점차 줄어들었다. 사신도는 여전히 그림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지만, 방위를 상징하거나 무덤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는 탈락하고 단순한 상상의 동물로 그려졌다.

[의의]

사신도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져, 무덤을 보호하고 고구려를 지키는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

▶ 관련자료

ㆍ사신도(四神圖)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