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산 선문
제목 | 9산 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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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九山禪門 |
유형 | |
시대 | 통일 신라와 발해 |
관련국가 | 신라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 종파인 선종(禪宗)이 신라 말에 번성하여 형성된 9개의 문파(門派).
[내용]
삼국을 통일한 후 신라에서는 수도인 경주(慶州)를 중심으로 화엄종(華嚴宗) 등 교종(敎宗) 불교가 크게 번성하였다. 교종에서는 문자로 쓰여진 경전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자 하였는데, 이는 경전을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이런 인식은 신분에 근거한 근원적인 차별을 정당화하면서, 중앙 진골 귀족 중심의 신라 사회 운영 원리를 더욱 고착시켜 나갔다. 그렇지만 신라 말에 이르러 중앙 진골 귀족 중심의 신라 사회에 불만을 품은 지방 호족, 6두품 세력이 성장하면서 선종 불교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선종에서는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개인의 수양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차별을 부정하는 인식으로 연결되어, 중앙 진골 귀족 중심의 신라 사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갈 수 있는 사상적 바탕을 제공하였다.
선종은 깊은 산속에서 좌선(坐禪)하는 수행법을 중시하여, 지방 산속의 선종 사찰을 중심으로 여러 문파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형성된 9개 문파가 중심이 되었기에, 이를 9산 선문(九山禪門)이라 한다. 9산 선문은 각 문파를 창시한 사람이나 그 제자들이 속한 중심 사찰의 이름 또는 그 사찰이 소재한 산의 이름을 문파의 명칭으로 삼았다.
선종은 처음에는 왕실이나 중앙 귀족과 일정한 관련을 맺으면서 문파들이 성립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선종 사찰이 있는 지역의 지방 호족이나 6두품 이하 귀족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였다.
첫째는 도의(道義)를 개조(開祖)로 하고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가지산의 가지사(迦智寺)를 본산으로 하는 ‘가지산문(迦智山門)’이다. 둘째는 홍척(洪陟)이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지리산의 실상사(實相寺)를 본산으로 개창한 ‘실상산문(實相山門)’이다. 셋째는 혜철(惠哲)이 전라남도 곡성군(谷城郡) 동리산의 태안사(泰安寺)에서 개창한 ‘동리산문(桐裏山門)’이다. 넷째는 도윤(道允)을 개조로 하고 강원도 영월군(寧越郡) 사자산의 흥령사(興寧寺)를 중심 사찰로 하는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다섯째는 낭혜(朗慧)가 충청남도 보령시(保寧市) 성주산에 있던 성주사(聖住寺)를 중심 사찰로 개창한 ‘성주산문(聖住山門)’이다. 여섯째는 범일(梵日)이 강원도 강릉시(江陵市) 사굴산의 굴산사(掘山寺)에서 개창한 ‘사굴산문(闍掘山門)’이다. 일곱째는 지증(智證)이 경상북도 문경시(聞慶市) 희양산의 봉암사(鳳巖寺)에서 개창한 ‘희양산문(曦陽山門)’이다. 여덟째는 현욱(玄昱)을 개조로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봉림산의 봉림사(鳳林寺)에서 개창한 ‘봉림산문(鳳林山門)’이다. 마지막 아홉째는 이엄(利嚴)이 황해도 해주시(海州市) 수미산의 광조사(廣照寺)에서 개창한 ‘수미산문(須彌山門)’으로, 9산 선문 중 가장 늦게 성립하였다.
[의의]
신라 말 유행한 선종과 9산 선문은 지방 호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였고, 고려 건국의 중요한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 관련자료
- ㆍ9산 선문(九山禪門)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선종과 풍수지리설
- ㆍ9산문(九山門)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신라 말기의 선종의 계승 의식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거사불교의 유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