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촌락 문서
제목 | 신라 촌락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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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新羅村落文書 |
유형 | |
시대 | 통일 신라와 발해 |
관련국가 | 통일 신라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통일 신라 시대 서원경(西原京)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靑州市) 부근 4개 촌의 경제 상황을 기록한 문서.
[내용]
전근대 시대에 국가가 작성한 공문서는 일정한 연한이 지나면 폐기되었지만, 종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재활용되었다. 이 문서도 폐기된 후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화엄경론(華嚴經論)』이라는 두루마리 형태의 불교 경전에 사용될 종이를 배접(褙接)할 때 가운데 들어가는 종이로 사용되었다. 이 『화엄경론』은 손상이 심하여 1933년 해체 보수하였는데, 그때 이 민정 문서가 발견되었다. 보수 작업 후 다시 원래대로 복구했기 때문에, 지금은 실물을 확인할 수 없고 사진만 볼 수 있다.
서원경 부근 4개 촌의 크기와 함께, 호구(戶口)의 수, 전답(田畓)의 넓이, 과실나무의 수, 소와 말의 수가 기록되어 있다. 또 3년 사이의 변화상도 적혀 있다. 특히 호구에 대한 정보가 자세한데, 사람의 수는 나이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기록하였다. 가호는 부유한 정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고, 각 등급별로 합산하여 숫자를 기록하였다.
이 문서는 각 촌 단위마다 거둬야 할 세금의 총액을 계산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이 문서를 통해 볼 때 통일 신라 시대에는 조세를 거둘 때 개별 가호의 경제력을 감안하여 차등 있게 부과하였으며, 개별 촌 단위로 조세의 총액을 계산하여 수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695년(신라 효소왕 4년) 설, 755년(신라 경덕왕 14년) 설, 815년(신라 헌덕왕 7년) 설, 875년(신라 헌강왕 1년) 설 등이 있으며, 그중 695년 설과 815년 설이 유력하다.
[의의]
이 문서는 통일 신라 시대의 경제와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이며, 문헌에 전혀 전하지 않는 당시의 조세 수취 제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자료이다.
▶ 관련자료
- ㆍ신라 촌락 문서(新羅村落文書)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설씨녀 이야기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통일 신라의 경제 정책
- ㆍ신라 촌락 장적(新羅村落帳籍)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신라의 촌락 지배
- ㆍ신라 촌장적(新羅村帳籍)
- ㆍ신라 민정 문서(新羅民政文書)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신라의 촌락 지배
- ㆍ신라 장적(新羅帳籍)
- 사료로 보는 한국사 해설: 신라의 촌락 지배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사: 통일 신라의 경제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