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민
제목 | 사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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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명 | 徙民 |
유형 | |
시대 | 조선 시대 |
관련국가 | 조선 |
유의어 | |
별칭•이칭 |
[정의]
조선 초기 북방 경계를 확정하고 4군⋅6진 등의 군사 기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인구가 부족했던 북방 지역에 남방 지역의 인구를 이주시켰던 일.
[내용]
조선은 건국 직후부터 북방 지역 개척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의 재위기까지 4군⋅6진을 개척하면서 압록강과 두만강을 조선의 실제 국경선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조선의 사민 정책은 기본적으로 북방 변경 지역의 방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추진된 정책이었다.
조선 전기의 북방 사민은 세종 대 처음 시작된 후 세조(世祖, 재위 1455~1468) 대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 대를 거치면서 경상⋅전라⋅충청 3도의 백성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당시 사민되었던 사람들의 규모는 범죄자를 제외하고도 3,733호(戶)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종 대에는 양계(兩界)의 남쪽 지역에서 북방의 연변 지역으로 이주한 인구 규모가 5,658호나 되었다. 성종 대 이후 남방 지역 백성들의 대규모 북방 이주는 없었지만 중종⋅명종⋅선조 대에는 범죄인의 북방 사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세종에서 성종까지의 재위기 동안 대규모 사민 정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사민 대상의 선정부터 이주, 안착, 주거지 등에 관한 철저한 계획과 지원책이 필요했다. 특히 이주민들이 해당 지역에 안착해서 대대로 거주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사민 정책의 성공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백성들은 생활 환경이 열악하고, 여진 세력과의 전쟁이 거듭되었던 북방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따라서 조정에서는 이주민들의 안착을 위해 사대부의 경우 관직에 임명하거나 세금을 면제해 주는 방식 등으로 지원했다.